언론 속의 좋은나라

경향신문두 유씨 이야기와 세 개의 교훈

  지난 10월 말에 광주에 사는 30대 남성 유씨는 대낮에 한 화약약품 회사에 침입해 둔기로 직원을 위협하여 100여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는데, 경찰은 CCTV 영상을 분석해 그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긴급 체포했다. 조사 결과 유씨는 과거 택배기사로 일하며 자주 찾았던 회사를 범행 대상으로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강도 행각은 분명 큰 잘못이고, 법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마음이 여린 50대의 여성 유순덕씨에게 이 사건은 아픔이었다. 이 소식을 전한 기사에서 용의자 유씨가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여 범행을 저질렀다는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가슴 아픈 사연을 접하는 데 익숙한 우리들은 대개 잠시 마음을 정리하고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빚 때문에 고통받는 채무자들을 도와주는 시민단체인 주빌리은행에 근무하는 금융복지상담사 유순덕씨는 달랐다. 강도 용의자 유씨 가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주민센터에 연락하여 혹시 가족이 긴급지원 요청한 사실이 있는지 문의하고, 연락처를 파악해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한 달 만에 유씨의 아내와 연락이 닿았고, 아래와 같은 속사정을 듣게 되었다.

  유씨는 원래 악단에서 연주를 업으로 했다. 경기가 안 좋아 악단 사정이 어려워지고 임금이 체불되었다. 여섯 살 먹은 딸까지 둔 가장으로서 마냥 버틸 수가 없었다. 악단을 그만두고 택배회사에 취업했지만, 이마저도 그만두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상당한 채무를 끌어 쓰게 되었고, 벌이가 없으니 연체를 하게 되었다. 한 달 16만원의 월세도 못 내어 보증금 160만원을 다 까먹었고, 퇴거를 종용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급기야 한 대부업체가 살림살이를 압류하여 경매 처분을 하기에 이르렀다. 경매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다급한 마음에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한다. 유씨의 아내 앞으로도 대출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으로 월 30만원씩 연체하지 않고 변제하고 있다고 했다.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상담사 유씨는 채권자들을 접촉하여 구속 수감 중인 용의자 유씨의 채무조정에 나섰다. 그는 원금 기준으로 세 곳의 대부업체에서 538만원의 채무가 있었고, 택배업체 근무 당시 발생한 통신요금 120만원과 단말기 값 약 60만원도 채무로 남아 있었다. 상담사 유씨의 노력으로 대부업체들은 260만원에 채무를 없애 주기로 했고, 통신사는 통신채권을 추심하지 않기로 했다. 연체 기간이 비교적 짧아 채무조정 대상이 아니었지만, 주빌리은행의 협상력이 발휘된 덕분이었다.

  강도질을 한 유씨는 나쁜 사람이고, 그의 아내를 수소문하여 도와준 유씨는 좋은 사람인가? 두 유씨 이야기의 첫 번째 교훈은 본디부터 악하고 선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이 사람을 범죄로도 이끌고 선행으로도 이끈다는 것이다. 용의자 유씨의 행동을 두둔할 수는 없지만, 그가 처한 극단적인 상황을 감안하면 감히 그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담사 유씨가 착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주빌리은행에서 일하는 금융복지상담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쳤을까? 

  대다수의 사람은 사회제도와 인간관계에 따라 선행을 하기도 하고 악행을 하기도 한다. 좋은 사회는 보통 사람을 악행으로 내몰지 않는 사회다. 유씨의 경우 범죄의 직접적인 동기는 살림살이까지 빼앗아가는 가혹한 채권 추심이었다. 이런 추심을 허용하는 사회는 나쁜 사회다. 물론 채권자의 권리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채무자도 최소한의 인권은 보장받아야 한다. 누구나 불운과 부주의로 빚에 쫓기는 신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5만달러어치의 재산까지는 보호해 준다. 우리의 경우 옷가지와 밥그릇 등 최소한을 빼고는 살림살이까지도 압류할 수 있으니 비정하기 짝이 없다. 

  두 번째 교훈은 감당할 수 없는 부채의 사회적 비용이다. 이런 상황에 몰리면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욕이 사라지고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빚쟁이 좋은 일만 되고, 자신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범죄와 가정파탄으로 내몰리기도 하고, 은둔과 자살 등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모두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유씨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를 방치한다면 그의 삶이 어찌 되고 그가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치겠는가? 어린 딸의 미래는 어찌한다는 말인가? 

  이런 사회적 비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채무조정 시스템이 필요하다. 빚을 못 갚는 채무자들을 두고두고 괴롭히기보다는 이들이 채무에서 벗어나 재기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더 효율적이다. 최근 정부는 극빈 계층에 대해 소액의 장기연체채무를 탕감해주기로 했다. 잘한 일이다. 그러나 용의자 유씨의 경우를 보면 장기연체에 빠지기 전에 연체 초기부터 적절한 채무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신용회복위원회가 있지만 채무자 구제 기능이 부족하다. 채무자 편에서 최선의 채무조정안을 세워 채권자와 협상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도저히 변제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쉽게 파산할 수 있어야 한다. 

[유종일의 경제새판짜기]두 유씨 이야기와 세 개의 교훈

  세 번째 교훈은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이다. 주빌리은행은 작은 시민단체에 불과하지만 공적 시스템이 구제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왔다. 빚탕감운동을 벌이며 여론을 환기시킨 결과, 정부가 호응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그런데 정부의 빚탕감정책에 대한 여론은 찬반으로 나뉜다. 반대 여론은 몰이해에서 비롯된 면도 있겠지만, 형평성이나 사각지대 등의 문제는 실제로 존재한다. 정부로서는 일정한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고, 이런 문제는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사실 주빌리은행도 기준이 있어서 개별 채무자에 대해서는 100만원이 지원 한도다. 그러나 누가 시비 걸 일은 아니기에 특별 모금을 해서라도 260만원을 모두 지원하기로 했다. 우리의 논의를 전해들은 한 어린이가 자신의 장난감을 팔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정부가 하기 어려운 일을 이렇게 민간이 할 수 있다. 정부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민간과의 협력 및 지원에 신경을 써야 한다. 


경향신문 입력 : 2107-12-14 20:58 / 수정 : 2017-12-14 21:0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