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속의 좋은나라

11월 <이달의 용산 사람책> 지식협동조합좋은나라

글/박은영 (해방촌 마을기록단)

이달의 용산 사람책 4지식을 나누고 보태는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은 온다 


▲ 가운데 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신동 이사장, 유종일 고문, 김용진 운영위원장 @후암동사진관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김신동 이사장(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을 만나러 가면서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말은 뜬금없이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리나》의 첫 문장이었다. 단체 이름에 ‘좋은 나라’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행복한 가정’의 확장판을 ‘좋은 나라’라 한다 해서 크게 무리될 것은 없으니 자연스런 연상 작용이었을 수 있다.

아니면 ‘좋은’ 이라는, 익숙하면서도 괴리감 느껴지는 단어가 신경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잘되는 집안을 보면 비교적 근심이 없고 구성원들이 건강하고 사이가 좋은 등 비슷비슷한 모습을 보이지만, 안 되는 집안은 애정 문제든 돈 문제든 아니면 자식들이 속을 썩이든 갖가지 이유로 불행하다는, 대가의 가슴 뜨끔한 통찰은 ‘행복한 가정’만이 아닌 ‘좋은 나라’의 경우에도 꼭 맞아 떨어질 테니.
이 문장이 얼마나 탁월한 대가의 통찰인가는, 이 문장에서 파생된 법칙이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으니 그런 단어를 거리낌 없이 갖다 붙인 단체의 자신감과 그걸 이뤄내기 위한 구성원들의 노력에 벌써 주눅 든 무의식의 발로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문장이 말하는 뜻은 간단하면서도 서늘하다. 행복을 이루는 조건들이라는 건 그리 특별하진 않다. 그러나 그 요소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모자라면 행복은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우리 삶은 모든 영역에서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만 하는 최소량이 있다. 필요한 요소는 아주 작은 양이더라도 기준치에 다다르지 못하면 문제를 일으킨다. 영양 과잉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요즘 시대 영양 결핍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몸의 균형이 깨져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꼭 필요한 극소량이 모자라 재앙은 찾아온다.

우리 사회는 지금 무엇이 부족해 이토록 어지러운 걸까?
지식협동조합은 그 해답을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1월에 있었던 사경센터 회의 모습 

▲사경센터 사람들과 한 컷

-
“절망감이 우리를 불러냈지요.”

발족 계기를 묻는 말에 대한 김신동 이사장의 답은 짧았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많은 걸 설명해왔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가 발족되던 2013년 6월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절망감을 안겼던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때다. 2012년 12월 19일의 대통령 선거 결과는 지식인들로 하여금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사회적 책임을 느끼게 했고, 그 선두에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좋은 나라! 시민들이 깨어 있는 나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홈페이지에 걸린 캐치 프레이즈. 다른 말이 필요 없었던 거다.
당시 활발하게 진보의 목소리를 내놓던 경제학자 유종일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를 중심으로 최영찬(서울대), 김신동, 김용진(서강대) 교수 등이 주축이 돼 모임을 결성했다. 여러 분야의 뛰어난 교수들이 속속 뜻을 같이하여 170명으로 닻을 올렸다. 조합의 교수 진용은 정말 화려하다.

성숙한 민주사회로 가려면 시민들의 신뢰를 받는 유능한 국회와 정부가 있어야 한다. 이들에게 상시적으로 적절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 주는 독립적인 기구가 있다면 좋을 것이다. 기업이나 정부가 운영하는 연구기관과는 또 다른 독립적 역할을 할 것이 필요하다. 정파적 논리도 배제해야 한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권위를 획득하기 힘들다. 모든 의사 결정이 1인1표인 협동조합 방식은 시민의 편에 서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를 진행하기에 가장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합리성과 객관성을 갖춘 한국형 싱크탱크는 탄생하게 된다.


▲지난해 송년포럼 모습


출범 이후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활약은 눈부셨다.
2013년 7월 첫 월례정책포럼 ‘위장대운하사업, 4대강의 대안을 찾는다’를 시작으로 ‘아베의 일본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 ‘사회적 경제, 복지국가의 대안인가’ 등 정치, 경제, 외교, 사회 전 분야를 아우르는 주제의 포럼을 매월 이어간 가운데 ’MB 자원 외교의 실제적 피해규명을 위한 국회 토론회‘ 등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은 도서 《MB의 비용》으로도 엮어내 사회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조합원들이 각자 속해 있는 전문 분야에서 MB 정부가 해 온 보여주기 식 기업 경영 정책의 폐단을 다각도로 살펴본 이 책은 공동체를 위한 지식의 생산과 소비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적절한 예시의 결집체였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에너지 공기업에 남긴 부채만 42조원에 이르는 등 그 폐해가 막대했던 MB 정부의 자원 외교 전 과정 및 4대강 사업의 허구성과 부작용, 무궁화위성의 헐값 매각과 세계 제1철강회사였던 포스코의 속절없는 위상 저하를 불러 온 낙하산 인사 등, 《MB의 비용》이 파헤쳐 보여준 MB 정부의 실책을 들여다보며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미래의 나라살림을 원활히 꾸려나가기 위한 성찰의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사회의 여타 정책 연구소 및 국회의원실과 공동으로 정책 심포지엄도 활발히 개최해 왔다.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평가와 과제’을 시작으로 ‘한국 민주주의 새 판짜기: 합의제 민주주의를 향하여’ ‘한국 원전 중심 전력정책과 재생에너지 대안의 미래’ 등 평균 연 3회 정도의 정책 심포지엄을 가져왔다.

<프레시안>과 공동으로 매주 사회 각 현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활발한 사회발언을 이슈페이퍼로 발간하기도 했다.
또한 공공적 가치에 헌신하는 지식인과 시민들의 양성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지식문화 개발 프로그램 및 지식관련 사업도 펼쳐 왔다. 그 가운데 사회지도층의 리더십 교육인 ‘글로벌최고위과정’은 비슷한 꿈을 꾸며 여기저기서 모색됐던 많은 지식인 모임의 워너비 모델이기도 했다.


▲ 현 이사장 김신동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얼마 전 용산구 서계동으로 자리를 옮겨 ‘좋은나라 시즌Ⅱ’를 열고 있다. <만리서재>라 이름 붙인, 한옥으로 된 북카페 형태의 사무실이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이곳 한옥에서 연구도 하고, 강연도 하고, 일반 시민들의 여가를 돕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꾸려왔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복합문화공간인 셈이다.

시즌Ⅱ에는 양영철 ㈜에너셀 전무이사, 정정윤 삼성서울병원 진료교수, 김보라미 법무법인 디케 변호사, 최진욱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용찬 연세대 언론홍보학부 교수 등이 이사진으로 포진해 있다.


▲ 만리서재(가운데 한옥)가 들어서자 방치돼 있던 주변집들이 새롭게 단장을 마쳤다.


중정을 품고 있는 한옥은 익히 알고 있던 서계동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단아했다. 집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서까래의 나무는 수백 년은 된 듯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고, 김 이사장의 속사포처럼 빠르면서도 과장 없이 명징한 언어는 그 나무들에 부딪쳐 명쾌한 울림소리를 냈다. 듣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밝아지며 가벼워졌다.
지난 2018년 12월이니, 연구소 2기가 출범한 지도 만 2년째다.
 

  •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하면 지식의 사회적 기여, 활발한 대사회적 발언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데, 지난 1기 때와 달라진 것이 있나요?

“지식의 나눔, 공유, 사회적 쓰임에 목표를 두는 집단이라는 점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어요, 8년 전엔 주로 교수들 170명 정도가 발기인으로 참여했었지요. 지금은 직장인 포함, 300명대로 그 숫자가 늘어난 것이 좀 달라진 것일까요?
대안 모델을 개발하려 하고 있고, 정책 포럼과 이슈페이퍼 발간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1년에 50호 정도를 냈으니까 지금까지 350호 정도 나갔네요. 시민 대상의 프로그램도 글로벌최고위과정만 빼고 지식여행이나 문명탐험, 자수 수업 같은 자잘한 것들은 계속 해왔어요. 빠진 자리는 사경센터나 사회적기업의 공익사업, 기업체 제안 사업 등으로 메꾸려 하고 있지요.“

  • 카페가 너무 예뻐요. 어떻게 옮겨 오게 되신 건지요?

“초창기 때 서대문에서 5년간 사무실을 운영했어요. 2년 전 이사장을 맡으면서 뭔가 활기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사업도 다각화하고 문화 사업을 하려면 개방형 사무실이 좋겠다 싶어 옮겨 왔지요. 사실 협동조합 운영이 쉽지 않습니다. 영리법인이긴 하지만 수익사업을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요, 조합원들의 후원회비와 기부금이 그나마 운영을 가능케 하는 주요 자원입니다. 문화 행사 장소로 임대해주는 등 공간 대여와 카페 운영으로 조합 운영 경비를 세이브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제가 제안을 했어요. 그 전 이사장 실이 감옥살이나 다름없기도 했고요.(웃음) 비상근이어서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 가능할 것 같아 60년 된 건물을 수리해서 들어 왔어요.”



<만리서재>의 등장은 서계동의 골목 표정을 일순 바꿔 놓았다. 문을 열자마자 입소문이 퍼지면서 일대에는 카페만 5개 들어섰고, 현재 이곳은 서계동 카페 골목으로 불린다.


<만리서재>로 분한 한옥은 1966년에 처음 지어졌다 한다. 그 후 오랫동안 살림집으로, 동네 약국으로, 그리고 인쇄 공장 등으로 고즈넉한 골목길 풍경에 한몫해왔을 터. 그러나 강북 도심의 슬럼화와 궤를 같이 하며, 과거 어느 한때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쓸쓸히 스러질 참이었다. 그 찰나, <만리서재>라는 이름을 얻으며 ‘시민 모두가 편하고 재밌게 드나들 수 있는 문화와 지식의 정거장’으로 되살아났으니 김 이사장의 안목은 그 자체로 귀한 ‘나눔’의 지적 자원이었지 싶다. 이곳에서 경세제민의 뜻을 펴고 싶은 학자들은 시민들과 더불어 지식과 문화를 만들고 나눌 것이다. 커피와 음료, 맥주 또는 와인을 앞에 놓고 강연과 세미나, 영화 모임 등 각종 지적 즐거움이 펼쳐진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게다.

 

  • 이 동네가 재개발 예정지로 한때 투자자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으로 알고 있는 데요…….

 

“이 동네에는 서로 다른 쪽을 보고 있는 두 개의 조직체가 있어요. 주민협의체와 재개발협의회. 주민협의체는 도심재생 사업을 위해 시가 후원해서 만들어진 단체이고, 재개발협의회는 말씀하신대로 재개발 이익을 바라보고 모인 결집체입니다. 이분들이 이 동네에 대해 재개발 재고시를 요구하고는 있지만 재생지역으로 확정된 곳이라 글쎄요…….


저희가 들어오고 나서 동네 분위기가 제법 바뀌었지요. 바로 옆집도 허름한 봉제 공장이었는데 저희가 하는 리모델링이 자극이 되었는지 건축가가 새로 건물을 지었어요. 그 옆 건물의 경우도 오래 방치돼 있던 걸 최근에 카페로 개조해 임대했어요. 앞에 있는 봉제공장도 카페나 식당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지요. 물론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도 없지는 않습니다. 서울역일대도심재생사업센터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워크숍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 센터는 5년의 한정된 기간 활동을 마치고 이번 달로 해소가 됩니다. 이후는 주민협의체와 같은 민간기구의 자발적 활동에 도심재생의 운명이 건네집니다. 여기서 인큐베이팅 CRC(협동조합) 만들어 도심재생사업을 계속 이어 간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센터에서 하던 일과는 비교가 어려울 것 같아요. 주민협의체 또한 실제 사업을 이끌 능력을 갖춘 기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이 일대 도심재생 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죠. 전임 시장 관심 사업이었으나 유고됐으니 사업이 거의 정지된 느낌입니다. 내년에 신임 시장 들어오면 방향이 정해지겠지요.

이해가 됩니다. 도심재생이란 게 갈등이 많은 사업이잖아요. 이를 무릅쓰면서 푸시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이렇게 갈등이 복마전처럼 얽혀 있는데, 순진한 생각이었지요. 마을에 도움이 되겠다며 들어온 게. 저는 길 가꾸고, 가로등 설치하고 하는 토건적이고 인프라적인 도심재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 만리서재 외부 모습

 

  • 그럼 생각하시는 재생의 그림은 무엇인가요?

 

“문화적으로도 공동체가 형성돼야 하고, 사람들 사이에 연대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길만 닦는 것으로는 깨끗한 동네나 협력하는 마을이 탄생하지 않습니다. 동네에 관심을 가지고 지내다 보니 주민협의체에 운영위원으로 참여도 하게 되었습니다. 몇 차례 회의에 참석해서 들어보니 참 안타까운 얘기들이 많더군요. ‘국립극단을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 옮기지 못할 것 같으면 담장이라도 헐어 달라’ ‘만리재~서울역 관통하는 4차선 도로를 놔 달라’ 등등. 수년 째 민원 사업들이 걸려 있지만 모두 실현이 어려운 형편입니다. 국립극단 경우만 봐도 그게 문체부 소속인데, 서울시가 어떻게 이래라저래라 하겠어요. 민원이 들어오니 공무원들은 속성 상 ‘검토해 보겠다’는 대답을 했을 텐데, 그 면피용 발언을 믿고 곧 ‘이렇게 될 것이다’ 기대만 하면서 세월이 가는 것이죠. 나쁜 의도는 없었겠지만 자기 입장에서만 들여다보고 긍정적으로만 얘기하면 되겠습니까? 


도심 재생을 관에 민원 넣는 일로 혼동하고 있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도시재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내 집이라 생각하고 내 집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인식이 앞서야 가능한 일이지요. 정작 주민들은 동네 골목에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있는 마당에 누가 어떻게 재생을 도와줍니까? 주민협의체나 주민자치회회에서 우리 마을 살리기 캠페인 같은 거라도 해서 옆 집 영감님이 쓰레기 버릴 때 ‘이 통에 버리시라’ 얘기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마을을 살맛나는 곳으로 바꾸면 모범사례가 될 테고, 그러면 구청장이 오고, 국회의원이 다녀가지 않겠어요? 그런 일은 주민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구청에 쓰레기 투기 신고하지만 버리는 놈을 당할 길은 없어요. 쓰레기 투기가 없는 동네로 가는 것이 재생의 첫 걸음입니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죠.”

 

  • 하하. ‘깨몽’이 쉽진 않은 일인데……

 

“주민협의체 총무 분이 오며 가며 그러세요. 여기 망하면 안 되는데 손님이 없어서 어떡하냐고요. 걱정을 많이 해주세요. 하하. 처음 이사 왔을 때는 경계심 가진 눈초리로 보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러나 시간이 묵묵히 흐르며 동네의 신뢰 같은 게 느껴집니다. 믿게 되니까 그 이후로는 뭘 자꾸 같이 하자고 합니다. 저희도 역시 뭘 하든 용산구, 서계동, 재생사업 등과 최대한 협력하고자 하는 것이 방침입니다.”



  •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나요?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출범 당시 글로벌최고위과정을 잘 해내시는 걸 보며 많은 단체들이 워너비로 삼았었지요. 강의 사업의 롤모델이었어요.

 

“초기 목표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 모아서 리더십교육을 하는 거였어요. 그러나 교육에 온 모든 사람들이 교육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어요. 네트워킹이나 사교에는 관심이 있지만 공부는 지루한 거죠. 이런 프로그램들이 갈수록 수강생 모집에 난관을 겪고 있습니다. 사업성에도 한계가 있고 운영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해서 결국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70년대 학번 출신의 교수들이 앞 서 움직이던 1기 때와는 달리 2기 들어오면서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과도기를 맞고 있는 중이다. 김 이사장은 교수들 중심으로만 가는 한 조합이 젊어지기 힘든 점이 있고, 사업 영역도 제한적이어서 일반인을 상대로 적극 조합원을 모집하는 방향으로 문을 열었다. 요즘은 일반인 중에도 숨은 고수가 많으니 이들의 참여가 조합에 영양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간의 노력으로 현재 조합원 300명 중 교수 200명. 나머지는 100명가량은 일반인들이다. 연구직에 있는 사람도 있고, 회사원, 사업가, 문화예술인도 있다.

 

“버티다보니 재생센터나 용산구 등에서 우리를 찾아내어 여러 제안들을 해옵니다. 용산구의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어느날 조정옥 팀장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한번 방문하시겠다고 해서 오시라 했더니 교육 프로그램을 같이 운영하자는 보따리를 가져오셨어요. 단기간에 기획해서 공동으로 운영한 매우 뜻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산도 얼마 안 되는데 훌륭한 강사진을 짜주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무척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여기 와서 회의도 하고, 차도 마시러 오는데, 단순히 차만 마시는 게 아니라 좋은 일로 엮여서 오니 아주 좋아요. 마치 고구마 넝쿨처럼 계속 일이 엮이니까요. ‘역시 존버야!’ 어려워도 끈기 있게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하.”



  • 다른 수익모델도 생각 중이신 게 있나요?

 

“각종 공익사업에 제안서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 쓴 제안서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코로나 스트레스를 없애는 멘토링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수업 방식과 관련, 학생들의 의견을 서베이 하는데 학생들이 거의 비대면 수업을 원한 반면 학생 하나가 대면 수업을 했으면 하더라고요. 이유를 들어보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아버지가 집에 있게 되자 자신들이 있을 공간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학교를 가고 싶어 했습니다. 저소득층일수록 대면 수업을 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공공시설도 문을 닫고 카페에 가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러다 보니 갈 곳이 없어요. 그 청소년들의 건강 상담과 함께 멘토링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선정은 되지 못했어요. 하하.”

 

최근에는 KT의 따뜻한 기술 첼린지에 도전하고 있다. 네이버의 지식인을 대체할 지식 공유 앱을 만들 생각이다. ‘한국판 위키피디아’다. ‘기승전 + 관련 광고’에다 빈약한 지식 정보, 본질적인 것은 숨겨져 있는 정보의 위계를 바로 잡을 야심찬 기획이다. 지식 정보 축적이 빈약하고 특히 취약계층이 접근할 만한 믿을 만 한 지식이 없는 현실에서 지식과 정보에 대한 격차를 줄이고 싶다는 게 김 이사장의 말이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의 강점이 잘 발휘될 수 있는 맞춤한 사업이라는 생각에 무릎이 쳐졌다. 마음이 읽혔는지 김 이사장이 웃는다. 좋은 기운이 퍼지는 느낌! 버티면서 궁리에 궁리를 더하면 살길은 열린다. 역시 ‘존버’다.

 

참!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는 ‘좋은 나라’의 최소 필요조건을 어디서 찾았을까? 돌아오는 길, 홈페이지를 열어본다. ‘자유’ ‘평등’ ‘평화’ ‘연대’ ‘생명’. 역시 멀고도 험난하다. 그래도 가야할 길. 행복이 결과가 아닌 과정이듯이, 좋은 상태도 그길로 들어서려는 과정 중에 얻어지는 것은 아닐까. 다시 힘을 내본다. 


출처: http://thecommons0099.com/detail_network.php?no=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