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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5·18 비극의 역사… 광주가 남긴 아픈 기억들

글/김신성 기자

'메이투데이-민주주의의 봄’ 서울전시 / 5개국 작가·연구자 26팀 참여 / ‘망각기계’ 포함 190여 작품 선봬 / ‘죽창가’ 등 목판화도 대거 전시 / “예술은 과거에 대한 증언이자 / 미래를 투사하는 살아있는 기억"

3층 입구에 들어서면 전투복 차림의 남자 사진과 전시장을 가로질러 반대편에 내걸린 젊은 여자 사진부터 대면하게 된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시위 진압에 나섰던 부대에서 현재 복무 중인 군인과 1980년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렸던 민주광장에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물론 두 사람은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상징적인 공간에 머물고 있는 두 인물을 통해 4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대치 중임을 표현한 권승찬 작가의 작품 ‘거기 3’이다.

권승찬의 ‘거기 3’. 전시장을 가로질러 군인 사진과 젊은 여성 사진을 마주보게 설치했다. 사진 속 두 인물은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40년이 흘렀어도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대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노순택 작가의 ‘망각기계’는 당시 사망한 이들이 묻힌 광주 옛 묘역의 영정사진들을 작가가 2006∼2020년 15년에 걸쳐 시간 간격을 두고 촬영한 작품이다. 유리액자에 넣은 영정사진들이 비바람에 바래고 훼손되어가는 과정을 담았다. 노 작가는 “망가져가는 사진들이 ‘나 이렇게 죽어갔어’라고 말하는 듯하다”면서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잊혀지고 또 기억되는지 관객에게 되묻는다.

노순택의 ‘망각기계’. 작가는 5·18민주화운동 사망자들이 묻힌 광주 옛 묘역의 영정사진들을 15년 동안 시간적 간격을 두고 촬영했다. 비바람에 바래고 훼손된 영정사진들을 통해, 역사적 비극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잊혀지고 또 기억되는지를 관객에게 묻는다.

지난 3일 개막, 7월 5일까지 아트선재센터(2, 3층)와 나무아트갤러리 두 곳에서 열리는 ‘MaytoDay(메이투데이)-서울전시-민주주의의 봄’에는 5개국 작가 및 연구자 26팀이 참여해 19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기획자 우테 메타 바우어(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가 광주비엔날레(대표 김선정)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이번 전시는 제목이 말해주듯 5월(May)의 일상성(day)을 이야기하고 그 시점을 현재(today)로 되돌려 보고자 한다.

코로나 시대의 도래는 국가의 통치 무능을 드러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감염병 시기에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대부분 정부의 신뢰도는 추락했다. 중국은 우한에서 감염자가 발생한 사실을 은폐했고 시진핑 주석의 권위는 곤두박질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기 종식’을 발표했지만, 대구·경북에서 감염자가 폭증하자 정치적 불신에 직면했다. 정부는 마스크 공급 확대를 공언했지만, 약국 앞에 늘어선 긴 줄은 공무원의 무능을 여실히 보여준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에서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위험이 증가하고 전문가의 권위가 추락한다고 주장했다.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정보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진다. 감염 예측에 대해 장담하면 신뢰도가 추락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 발표한 내용이 내일 바뀔 가능성이 있다. 방역 정책도 어떤 결과를 만들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난무하는 가운데 중국 위협론, 중국 동포에 대한 공포감, 대구·경북 지역에 대한 혐오가 넘쳐난다. 의학적 지식이 정치화되면서 국회에서도 진영 논리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메이투데이’는 서울과 타이베이(대만), 쾰른(독일),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에서 5월부터 6월에 걸쳐 동시에 열고자 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에 각각 현지 일정을 조정하여 개최하고 있다.

바우어는 지난 20년간 수차례 광주를 방문하며 광주가 남긴 기억들과 지금도 유효한 민주주의 정신에 주목했다. 그녀는 “멈춰 있지 않고 항상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면서 “예술은 과거에 대한 증언이자 새로운 미래를 향해 투사하는 살아 있는 기억”이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강연균의 ‘하늘과 땅 사이 1’. 작가의 5·18 연작 중 초기작품. 잔혹한 군사압제하의 공포와 번민, 슬픔으로 고통받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강연균의 작품 ‘하늘과 땅 사이 1’은 잔혹한 군사압제로 인한 공포와 번민, 슬픔으로 고통받는 인간상을 뒤틀린 시신과 육체를 통해 보여준다.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그려낸 파블로 피카소의 명작에 빗대어 ‘한국의 게르니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창성의 보도사진은 박제된 역사의 순간들을 불러와 현재의 시점에서 민주주의를 복기한다.

1980년 광주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취재 자료들과 5·18에 개입한 당시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를 최초로 폭로한 미국 기자 팀 셔록의 아카이브 문서들은 챙겨볼 만하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6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