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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시사저널> 의학적 방역뿐 아니라 사회적 방역에도 관심가져야

글/김윤태 고려대학교 사회학 교수

코로나 시대의 사회…감염병 위기와 국가의 무능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극한의 절망과 공포에 대응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다양한 형태로 사회의 풍경을 바꾼다. 학교 개학 연기와 재택근무에 이어 정부 행사, 문화공연, 교회 예배가 취소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요된다. 상점과 식당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고, 거리의 사람들도 마스크를 낀 채 걸어간다. 우리도 모르게 삶의 양식이 변화한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재난 영화 《컨테이젼》을 보는 듯한 공포가 짓누른다. 코로나 시대는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초현실적 분위기를 재현한다.


3월11일 서울 성동구 군자차량사업소 검수고에서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지하철 전동차 내부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생태계 파괴와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
인간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전염병이 있었다. 전염병은 아테네 제국을 뒤흔들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목숨도 뺏어갔다. 흑사병은 로마와 몽골 제국을 강타했고, 중세 유럽을 거의 파괴했다. 에르난 코르테스의 에스파냐 군대가 가져온 홍역은 잉카 제국을 무너뜨렸고, 나폴레옹의 대군도 러시아 정벌에서 발진티푸스로 곤욕을 치렀다. 20세기에는 전 세계에 퍼진 인플루엔자가 무려 2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역사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전염병에 굴복했다.

오늘날 전염병은 동물에서 전염되는 ‘인수공통 전염병’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조류독감, 사스, 에볼라, 에이즈, 메르스의 공통점은 모두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감염된 질병이다. 미국 작가 데이비드 쾀멘은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에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나무를 베고 토종 동물을 죽일 때마다 갈 데가 없는 병원체가 인간에게 다가온다고 주장한다. 뿌리 뽑힌 미생물은 새로운 숙주를 찾든지 멸종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동물들이 살 곳이 사라지자 더욱 인간의 마을에 가까이 다가온다.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팽창하면서 자본의 이윤만큼이나 병원체의 숙주도 늘어난다. 이런 점에서 현대의 전염병은 중국 또는 어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하게 지구적 현상이고, 결과적으로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다.

전염병의 급속한 확산은 불가피하게 개인의 활동과 사회적 관계, 나아가 사람들의 생각과 국가 제도의 성격을 바꾸었다. 시칠리아섬에서 출발한 중세 유럽의 흑사병은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말살시켰다. 흑사병의 참혹한 결과는 사회의 권력관계를 폭로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많은 피해를 봤다. 정부는 보건통행증을 발급했으나 전염병의 확산에 속수무책이었다. 의사는 무력하고 교회의 신부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1351년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흑사병이 만연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절대적 신을 숭배하는 중세적 신앙과 엄숙한 도덕주의가 무너지자 생동하는 인간의 삶과 욕망에 관심을 돌렸다. 영국에서는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와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등장했다. 신이 인간의 전염병을 막을 수 없으며, 왕도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은 개인의 이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가 자라날 토양을 만들었다. 현재 코로나 위기가 생태계 파괴의 결과이며 자본주의의 묵시록이라면 우리는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의 도래는 국가의 통치 무능을 드러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감염병 시기에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대부분 정부의 신뢰도는 추락했다. 중국은 우한에서 감염자가 발생한 사실을 은폐했고 시진핑 주석의 권위는 곤두박질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기 종식’을 발표했지만, 대구·경북에서 감염자가 폭증하자 정치적 불신에 직면했다. 정부는 마스크 공급 확대를 공언했지만, 약국 앞에 늘어선 긴 줄은 공무원의 무능을 여실히 보여준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에서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위험이 증가하고 전문가의 권위가 추락한다고 주장했다.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정보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진다. 감염 예측에 대해 장담하면 신뢰도가 추락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 발표한 내용이 내일 바뀔 가능성이 있다. 방역 정책도 어떤 결과를 만들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난무하는 가운데 중국 위협론, 중국 동포에 대한 공포감, 대구·경북 지역에 대한 혐오가 넘쳐난다. 의학적 지식이 정치화되면서 국회에서도 진영 논리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코로나 시대는 사회의 위기도 가속화한다. 코로나 시대에서 가장 두드러진 삶의 양식은 각자도생이다. 마스크를 사재기하는 상인들과 중국에 다녀온 후 자가격리 권고를 지키지 않는 신천지 교인들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렸다. 대구·경북의 시민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와 기부의 손길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혼자만의 살길을 모색한다. 각자도생은 삶의 유일한 대안처럼 보인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인들은 공교육을 개혁하기보다 각자 사교육에 열중하고 해외유학 열풍에 편승했다. 공공주택을 늘리기보다 각자 부동산 투기에 몰두했다. 이렇게 자유시장과 과잉경쟁은 사회적 삶을 해체했다. 결과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사회적 신뢰가 최하위권이다. 이에 비해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국가의 통치 불능과 각자도생의 한계
이렇게 한국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화되면 사회적 불신과 함께 계층 간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우려가 크다. 자영업자의 경영난과 무급휴직 증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가난한 사람들은 전염병에 걸리기 전에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위기감에 빠진다. 세계경제의 침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노인, 여성,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확진 없이 빈곤층을 죽이고 있다. 국가는 의학적 방역뿐 아니라 사회적 방역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며, 실업과 빈곤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가 신봉하는 자유시장의 신화에서 벗어나 모든 시민을 위한 보편적 사회보장을 제공하고 기후변화, 감염병, 생태계 파괴 등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코로나 시대가 계속될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인간이 감염병의 발생과 전파의 원인과 경로를 알게 된 것은 불과 100년이 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에 파스퇴르와 코흐가 세균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병원성 미생물의 위험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을 만들고, 지구상의 모든 데이터를 하나로 모으고, 우주여행의 꿈도 꾸지만, 아직도 미세한 병원균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을 정복하지 못했고, 아마도 영원히 정복하지 못할 것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신뢰를 가지고 서로 돕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사랑이란 불행을 견뎌내기 위해, 가장 처참한 시대를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소박하지만 중요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한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6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