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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한겨례>[크리틱] 반세기만의 '졸업', 같거나 다르거나

글/노광우 영화칼럼니스트


2월은 학교들이 졸업식을 치르는 시기이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졸업식이 축소, 취소되고 있다. 원래대로 졸업식이 성황을 이루었다면 이 시기에 맞춰 개봉한 <졸업>(1967)이 더 주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옛날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어려운 점이 현재 한국 극장업계의 문제점 중 하나임을 고려하면 50여년 전의 영화를 개봉하는 것은 무척 희귀한 일이다.


<졸업>은 196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텍스트인 동시에 현대에도 어떤 시사점을 제공한다. 매해 많은 학생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다. 그리고 유명인의 성공담이나 자기 계발 서적은 성공의 필요조건으로 뚜렷한 목표의식을 강조한다. 그런데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많지 않다. 학교를 졸업하고 당장 앞으로 어떤 전망이 있는 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자기가 지원해서 붙은 직장 생활을 하거나 상급 학교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 등, 어떤 방향이 정해지고 거기에 맞춰 살다 보면 연륜이 쌓이거나, 다른 방향으로 선회해서 경력을 쌓는 경우는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대학을 졸업한 벤 브래독이 집에 돌아오자 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유한 부모는 귀향 축하 파티를 연다. 파티에 온 이웃 어른들은 벤에게 앞으로 계획에 대해 계속 물어보는데 이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명절 때 집안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진학, 취업, 결혼, 출산에 대해 계속 물어봐서 스트레스가 쌓이는 상황과 같다. 아무런 전망도 없는 벤은 아버지의 동업자 로빈슨씨의 부인의 유혹에 넘어가고 로빈슨 부인과 밀회를 즐기게 된다. 그 이후 벤의 장래에 대해 근심하는 벤의 부모는 벤이 로빈슨씨의 딸인 일레인과 맺어지기를 기대하고 데이트를 주선한다. 처음에는 일레인과 만나기 싫었던 벤은 순수한 일레인에게 반해서 로빈슨 부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한다.

<졸업> (1967)의 포스터

영화에서 로빈슨 부인은 벤에게 대학교 시절에 미술 전공이었지만 로빈슨을 만나 임신을 하게 되어 학교를 그만두고 주부로서만 살아왔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자기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추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 영화의 결말에서 대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려는 일레인은 자기를 찾아온 벤과 함께 도망친다. 이 장면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는 당시 청년의 반항으로 통쾌한 느낌을 주지만 일레인도 미래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대학교를 그만둔다는 점에서 어머니와 비슷한 선택을 한 셈이다.


즉, 벤과 로빈슨 부인, 일레인은 모두 대학생이던 시절에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해보지 못했다. 영화에서 로빈슨 부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로빈슨 부인은 그저 누군가의 부인과 엄마로서만 살아왔고, 이름이 있는 존재로 살 기회가 없었다. 익명의 로빈슨 부인의 청년 시절은 미국이 2차대전 이후 다른 나라들을 누르고 강대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그에 비해 딸은 미스 로빈슨이 아니라 일레인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된다. 일레인이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자기 이름을 가진 존재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을 해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1960년대 말의 영화에서 바라본 1970년대 이후의 전망이었다. 벤과 일레인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이룩해야 할 원대한 전망은 없는 세대를 상징한다.


한국 사회의 기성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를 겪었다. 새로운 세대는 그에 비견될 만한 커다란 변화를 겪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졸업>의 벤과 일레인처럼 자기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분투하고 이는 이전 세대의 경험과는 다를 것이다. 어떤 삶을 살든 오늘은 졸업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