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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뉴스톱>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의 '산업적' 맥락

글/노광우 영화평론가

[노광우 칼럼] '미투운동'과 '넷플리스' 이후 할리우드 지각변동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후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마침내 아카데미에서 4관왕에 오른 것은 아카데미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고 세계영화사 차원에서도 놀라운 사건이다. 아마 다양한 매체에서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에 대해 다각도에서 살펴보는 기사가 나올 것이다. 여기서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이 영화산업, 특히 미국영화산업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살펴보자.

미국영화시장은 법적으로 외국영화 수입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외국영화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그래서 ‘기생충’ 수상 이전에 온라인 잡지 벌처에 실린 알렉스 정이 봉준호 감독과 한 인터뷰에서 아카데미는 미국영화, 영어권 영화만을 대상으로 하는 ‘로컬’ 행사라는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기생충’의 수상으로 외견상 아카데미가 이런 로컬 성격을 벗어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아카데미는 미국영화산업계를 대표하는 주요한 행사이기에 약간의 변화는 있겠지만 당분간은 로컬한 성격을 유지할 것이다. 이는 아카데미 영화상은 태생부터 로컬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아카데미 영화상과 미국영화산업 구조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 아카데미는 영화상은 영화제(film festival)이 아니고 영화상 시상식(film award)이다. 이 행사를 통해 미국 영화계의 한해를 마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은 1929년에 처음 열렸다. 이 당시는 영화가 발명되어 세상에 나온 지 35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즉, 영화는 아직 예술로서 간주되지 못했고 대중오락으로만 간주되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는 영화가 저급한 대중오락물이라는 인식을 개선하고 영화도 진지한 예술이라는 인식을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생긴 이후에 할리우드는 기술적으로는 유성영화와 색채영화로, 산업구조로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수직계열화에 바탕을 독점적인 산업구조로 변했다. 영화의 역사에서는 이 시기는 ‘고전적인 할리우드 시기(The Classical Hollywood)’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아카데미상은 할리우드에서 생산된 작품들의 품격을 보증하는 상이 되었다.

텔레비전의 등장과 파라마운트 판결로 인한 수직계열화의 붕괴로 고전적인 할리우드 시기는 1950년대에 끝이 났고, 메이저와 연계되지 않은 독립적으로 경영되는 군소영화사들과 저예산 독립영화, 외국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소규모 극장들이 이때부터 대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1940년대 중반부터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1950년대 중반부터는 프랑스의 누벨 바그 등 이른바 작가영화라는 경향이 생겼고, 이 영화들은 이런 소규모 수입배급사와 소극장들을 통해 미국 관객들에게 소개되었다. 이 시기부터 미국의 군소영화사가 제작한 미국영화는 독립영화라고 일컬어졌으며, 이런 외국의 작가영화들은 예술영화로 부르는 관습이 생겼다. 이런 우수한 외국영화들의 존재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1947년부터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이 생겼는데 1955년까지는 특별상으로 시상하다가 1956년부터 경쟁부문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미국에서 외국어 영화를 보는 관객층이 소수였기에 외국어영화상은 일반 관객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1970년대부터 할리우드 메이저 회사들은 ‘조스’와 ‘스타 워즈’의 성공을 기점으로 성수기 시장을 노린 블록버스터들을 만들어내고 나중에 비디오 시장과 유선방송에 방영권을 팔고 파생상품으로 수익을 올리는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이런 방식의 산업 형태를 일컬어 ‘새로운 할리우드 시기(New Hollywood)’라고 부른다(‘새로운 할리우드 시기’를 1960년대부터 1980년대로 보고 ‘아메리칸 뉴 웨이브’와 같은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블록버스터들은 대체로 청소년 관객층에게 소구하는 판타지 장르가 많았고, 아카데미상은 이런 판타지 블록버스터들과는 구분되는 휴먼 드라마나 사극을 작품상 수상자로 결정함으로써 오락영화와 드라마가 나뉘게 된다. 1980년대부터 할리우드 메이저와 연계하지 않은 독립 군소영화사들 중에서 이런 중간규모 시장을 노리는 작품들을 투자, 제작, 배급하는 회사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이들은 아카데미상 수상을 자기 영화의 홍보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회사들 중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회사는 와인스타인 형제가 세운 ‘미라맥스(Miramax)’라는 회사였고 이들이 제작, 투자한 작품들 중에 흥행과 비평에서 성공한 작품들이 많아졌으며 이 회사들은 할리우드 메이저들에 버금가는 미니메이저로 부상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와인스타인-미라맥스로 대표되는 미니메이저들이 주도하는 독립영화계의 상층부를 일컬어서, 인디펜던트와 할리우드를 합성해서 인디우드(Indiewood)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겼다. 이 인디우드를 대표하는 영화가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와 로버트 로드리게스, 그리고 코엔 형제의 영화들이다. 이들의 영화들은 일단 유럽의 칸느, 베를린, 베니스에서 먼저 주목받았고, 미국에서는 독립영화의 아성인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거나 투자배급사와 연결되었다. 이 시기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들은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었고, 유럽이나 일본, 중국에서 온 심오하고 어려운 영화가 아니었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이들 미니메이저들을 통해 외국영화들, 주로 유럽 영화들이 미국시장에 소개되었고 미국 관객들 중에서 외국영화, 예술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늘어났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에 ‘인생은 아름다워’나 ‘일 포스티노’같은 작품들이 아카데미상에서 외국어영화상 부문만 수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도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마침내 2000년에 ‘와호장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외국어영화상 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도 수상하는 등, 비영어권 영화가 외국-예술영화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영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카데미상은 간간이 백인 남성 영화인이 아닌 흑인과 여성 영화인에게도 시상하는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즉, 새로운 할리우드 시대에 미국 영화산업계는 기존의 할리우드 메이저, 와인스타인과 같은 미니메이저가 주도하는 중간계인 인디우드, 그리고 소규모 독립영화회사들로 삼분되었다. 그리고 아카데미상은 거의 인디우드가 장악한 셈이 되었다. 이에 대해 할리우드 메이저는 이들 미니메이저들을 인수 합병하는 식으로 대응했고 많은 미니메이저들이 할리우드 메이저의 계열사가 되었다(와인스타인 형제의 ‘미라맥스’는 1993년에 월트 디즈니 회사에 인수합병되었다. 1999년에 ‘미라맥스’에서 퇴사한 와인스타인 형제는 ‘와인스타인 회사(The Weinstein Company)’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독립 미국 작가영화의 투자배급 활동을 계속 했다).

2010년대말에 들어서 미국영화계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가장 큰 변화는 영화를 온라인 스트리밍하는 넷플릭스의 부상이었다. 극장과 텔레비전, DVD 이외에 새로운 영화 향유 방식이 등장했고 이런 변화에 대응하느라 2019년에 월트 디즈니회사는 20세기 폭스사를 인수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회사가 중소 규모 회사를 인수한 적은 있었지만 메이저들끼리 인수 합병이 일어난 것은 MGM과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합병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디즈니-폭스의 합병 이후에 할리우드 메이저 회사들은 자기들의 협회인 미국영화협회(The 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 MPAA)에 넷플릭스를 공식적으로 회원사로 가입시켰다. 이것이 2018-19년에 벌어진 메이저 영화계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한편, 미국 독립영화계에서는 지난 30년간 인디우드를 주도했던 하비 와인스타인이 성폭력 사건으로 구속 수감됨으로써 영화계에서 퇴출되었다. 거물이 사라짐으로써 당분간 인디우드의 패자는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이 영화를 북미 지역에 배급한 ‘네온(Neon)’이라는 회사가 새로운 패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네온은 텍사스 오스틴 출신 팀 리그와 한때 와인스타인 회사에서 일했던 톰 퀸이 2017년에 함께 설립한 회사이다. 팀 리그와 톰 퀸은 봉준호 감독의 열혈팬들이었다. 팀 리그는 자기가 운영하는 극장에 봉준호관을 만들었고, 톰 퀸은 와인스타인 회사에서 일할 때 ‘설국열차’를 북미지역 배급에 관여했고, 여러 배급제작사에서 일한 경력을 바탕으로 ‘기생충’의 성공적인 북미 지역 배급과 홍보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아카데미상의 변화는 넷플릭스의 부상과 와인스타인의 퇴출 이후의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고, ‘새로운 할리우드’를 대체할 만한 용어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나는 잠정적으로 이 새로운 상황을 ‘다문화적 디지탈 할리우드(Multicultural Digital Hollywood)’로 부르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예전에는 미국에서 외국영화는 유럽과 아시아, 남아메리카의 작가영화이거나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영화가 많았다. 그래서 외국영화는 심각하고 진지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다. 게다가 영어자막을 읽는 것을 불편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비디오 시장을 중심으로 홍콩 무협영화와 일본 공포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저변이 확대되었고 아시아 영화를 향유하는 관객이 늘어났다. 따라서 외국영화는 곧 진지하고 심각한 예술영화라는 인식은 2000년대에 들어서 서서히 변화했고 외국에서 온 즐길 수 있는 대중영화라는 인식이 나타났다. 즉, 미국에서도 미국 대중문화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외국 대중문화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기생충’은 그렇게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외국산 대중영화로 미국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리고 ‘기생충’의 성공으로 그에 버금가는 외국산 대중영화를 찾으려고 미국의 수입배급사들도 늘어날 것이고 아시아 포함, 미국 이외의 영화인들에게 형식적으로만 개방되어있었던 미국영화시장이 이제 “실질적으로 개방되었다는” 신호탄이 된 셈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미국영화, 영어권 영화가 다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 갑자기 외국영화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배하게 되면 미국 관객들이 아카데미 시상식 자체 시청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요 시청자인 미국 시청자들에게 소구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영화의 자존심이 무너지지 않는 범위 안에서 외국영화, 인종과 성의 마이너리티 영화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외국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아카데미상에 대한 외국 시청자들의 관심이 더 커졌다. 즉,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미국 내 중계 시 시청률은 떨어지는 추세이지만, 외국에서는 오히려 더 커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만 미래는 열려있다. 그 때가 되면 새로인 다른 복잡한 변수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또한 많은 이들에게는 희망 고문이 될 수도 있다. 희망 고문도 관심과 기대가 높아야 희망 고문이 되는 것이다. 미국영화계와 아카데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 그때까지는 “카르페 디엠”하면서 “굿 나잇 앤 굿 럭.” (각 대사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죽은 시인의 사회’, 그리고 ‘굿 나잇 앤 굿 럭’에서 따왔다)



*필자 노광우는 영화문화평론가다. 고려대 서울대 성균관대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뉴욕대학교에 시네마스터디스에서 석사학위를, 서던일리노이대학교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 앤드 미디어아츠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뉴욕 한국영화제를 만들었다 . 공저로 <드라마의 모든 것>, 역서로 <할리우드 만화영화> <글로벌 미디어 스포츠> 등이 있다..



출처 : 뉴스톱(http://www.newstof.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