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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 안 된 ‘2022 대입제도 개편안’과 공론(空論)된 ‘대입 공론(公論)화’

현안과정책 238호

글/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

  대한민국 입시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수능 점수 위주의 대입 선발로 인해 지나친 입시경쟁이 유발되고,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전혀 기르지 못하는 지식암기 중심의 교실 수업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새 교육과정을 도입하고 이에 맞도록 수능시험과 대입제도를 개편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는 새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시험 체제와 대입제도를 만들겠다고 공약으로 국민과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8월 17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2 대입제도 개편안’은 국민과의 약속이 파기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교육개혁의 좌초로 평가되는 이러한 결정의 이유는 정부가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해 복잡한 교육문제를 공론화에 부쳤기 때문이다. 공론화의 과정과 결과 해석마저 왜곡되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안게 되었다. 따라서 향후 대입제도와 교육정책을 결정은 정책 방향 자체가 퇴행되는 공론화 방식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최소한의 주제를 공론화하는 경우에도 절차적 공정성과 공론화 결과가 정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견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들어가며

  지난 8월 17일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이하 2022 대입 개편안)’을 발표했다. 발표 이후부터 지금까지 뇌를 떠나지 않는 노래 가사가 있다. “됐어, 됐어, 이제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됐어... (중략),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1994년에 발표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가사이다. 최근 빌보드 차트 1위를 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2016 KBS 가요대축제’에서 이 노래를 커버했다. 신곡처럼 느껴졌다. 20여년 전에 발표된 노래이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정확히 25년이 지났지만 입시 경쟁으로 인한 학업 스트레스로 생을 마감하는 청소년은 증가하고 있고 교실 수업은 여전히 주입식에 지식암기 중심의 문제풀이 위주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2022 대입 개편안에 거는 기대가 컸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을 통해 앞서 언급한 입시 경쟁과 지식암기 중심의 교육으로 대변되는 심각한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발표한 2022 대입 개편안은 본 후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교육공약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는 방향으로 2022 대입 개편안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2022 대입제도 개편의 근본적인 이유

  2022 대입 개편이 필요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새 교육과정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목적이 고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니 교육과정이 크게 바뀌면 수능시험도 바뀌는 것이 도식이다. 대입에서 수능시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수능의 성격이 달라지면 대입제도도 이와 맞게 개선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된다. 올해부터 고교에 새 교육과정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사실 올해 고1 학생들이 치르는 2021학년도 대입이 개편되었어야 하지만 작년에 큰 홍역이 있었다. 수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문제와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시시비비가 엇갈리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1년을 유예했으며, 이 또한 교육부가 결정하지 못하고 원전 문제와 동일한 방식의 공론화 과정을 진행했다. 그런데 공론화 과정을 비롯해 도출된 결론으로 확정한 2022 대입 개편안은 여전히 문제 투성이다. 그렇다면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무엇이길래 수능시험은 물론이고 대입제도까지 개편해야 하는 것일까?

  교육부는 2015년 9월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및 각론을 확정 발표’하면서 교육과정 개정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핵심 과제이며,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 목표임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창의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 개정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지식암기 중심의 교실 수업을 토론․탐구․체험 중심으로 개선하는 것이라고 교육부는 밝히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무엇이 지식암기 중심의 교실 수업을 하도록 이끌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교육부 보도자료가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바로 수능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이다. 수능점수를 100%로 선발하는 정시 수능전형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시에서도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여기에 수능-EBS 70% 연계 정책이 실시되고 있어 고3 교실의 교과서는 이미 수능-EBS 연계교자가 된지 오래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인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과 ‘토론·체험·실습’ 중심의 수업 개선은 요원하다. 이런 맥락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조응하는 수능은 절대평가이며, 대입제도는 수능위주가 아닌 새 교육과정을 통해 혁신된 학교교육의 내용이어야 한다. 작년 대선 과정에서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도 이러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2022 대입 개편안’ = 문재인 정부 교육공약 폐기

  문재인 정부는 공약과 교육부의 공식 발표를 통해 2022 대입제도를 다음 세 가지 사항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개편하겠다고 약속했다. 첫째, 2015 개정교육과정에 부합하도록 수능체제와 대입제도를 개편하고, 둘째, 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 담보하며, 셋째, 고교학점제 실시를 통해 고교교육을 혁신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22 대입 개편안 내용을 볼 때 이런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으로 집약되는 위 세 가지 사항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8가지의 필수사항이 결정되었어야 한다. 그렇다면 8가지 필수사항은 무엇이며 이것이 2022 대입 개편안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교육부는 2022학년도 수능을 전과목 절대평가로 전환하지 않고 여전히 국어, 수학, 탐구 영역을 상대평가 과목으로 남기는 악수를 두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가장 부합하는 수능 평가방식은 전과목 절대평가이다. 과도한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수능 과목 중심의 지식 암기 교육을 혁신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개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평가 과목을 남겨둔 채로 남을 이기기 위한 경쟁교육에서 벗어날 것을 우리 교육에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에서는 수능전형의 비율을 30% 이상으로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와 정면충돌한다. 고교의 수업과 평가를 진로 맞춤형으로, 토론·실습·체험 중심의 참여형 수업으로 개정하는 것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이다. 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이다. 지식암기 중심이며 같은 유형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풀어야 유리한 수능 시험이 미치는 영향 때문에 교육과정을 개정했는데 수능 전형을 확대해 시대를 역행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교육부는 고2·3에 배우는 과목을 대거 포함해 수능 시험범위를 구성했다. 이로 인해 고교 3년간 수능 시험범위 과목을 가르치기 어려운 기형적인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인 2015 개정교육과정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문·이과 학생들이 공통으로 배우는 과목을 수능에 출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고1에 배우는 ‘공통+통합’ 과목을 수능 시험범위로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2·3에 배우는 일반선택과 진로선택과목을 시험범위로 결정했기 때문에 고교는 교육과정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 결과 학교는 무리한 진도를 빼는 구태를 재현하게 되고 학생들은 선행학습을 하기 위해 학원 등 사교육기관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 뻔하다.

  수시 수능최저학력 기준을 폐지하거나 절대평가 등급을 활용할 때 고교의 수업과 평가를 혁신해 정규 교육과정의 질을 개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여전히 상대평가 등급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활용하는 결정을 했다. 학생들은 수시전형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전형요소를 대비하면서도 동시에 수능 준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중 부담을 여전히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수시전형에서 수능의 영향력이 지속되는 한 정규 교육과정의 결과를 담은 학생부의 질, 즉 학교의 수업과 평가는 지식암기 중심의 문제풀이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는 결과적으로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는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불공정성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 미반영해야 할 비교과 영역이었던 수상경력, 자율동아리, 소논문, 수상및인증, 봉사활동, 독서활동 중 소논문만 미반영 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수상경력과 자율동아리의 학생부 기록 횟수를 제한한다고 하지만 전형 서류 중 자기소개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이 두 영역에서 기록되지 않은 활동들을 얼마든지 입시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교육부는 구술고사를 허용하는 것으로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교과지식을 묻는 구술고사의 경우 학교 교육과정으로 대비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사교육 유발 요인이다. 그런데 구술고사를 유지한다는 것은 수험생 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학생부종합전형 취지에도 맞지 않다.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취평가제 도입을 소극적으로 적용했다. 학생의 교과 선택권을 보장하자는 교육과정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반선택이든 진로선택이든 선택과목은 절대평가를 실시해야 하는데 진로선택과목에만 적용하는 소극적 결정에 그쳤다. 2022년에 전면 실시하기로 한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는 2025년으로 연기해 교육공약 및 국정과제를 자체 폐기했다.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문제는 고교학점제 실시를 위한 필수 환경을 만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이다. 새 정부가 국정 운영을 시작한 이래로 미온적으로 일관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교육부가 이번 발표를 통해 2020학년도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는 것은 2년이 다 되도록 고교체제 개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정 사항을 국민에게 내놓았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고교체제 개선 공약이 폐기 수순을 밟는 것으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가? 교육개혁의 방향을 정하고도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해 대입 개편을 공론화에 부쳤을 뿐만 아니라 공론화의 결과를 잘 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공론(空論)된 ‘대입 공론(公論)화’

  2022 대입 공론화 결과는 다수안이 없는 채로, 시나리오 1안(“수능 상대평가, 수능 정시 45% 확대”)와 시나리오 2안(“절대평가 안”)이 오차범위 내 1위, 2위 표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론화위원회 자체도 이 차이는 통계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발표했다. 공론화 전문가들도 이번 대입 공론화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공론화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공론화를 진행한 국가교육회의는 정부에 대입제도 개편을 원점에서 재검토 하든지, 정부가 중심을 잡고 수능 절대평가 등 정책 목표와 방향에 맞는 여러 핵심 교육정책들을 고려해 대입제도 확정안을 발표하라고 권고안을 도출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과 국정과제 정면충돌하는 ‘수능 상대평가-정시확대’를 골자로 하는 권고안을 교육부에 이송했다. 이송안을 바탕으로 교육부가 정책을 확정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은 폐기되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공론화 과정도 불공정했다. 사전에 룰을 합의하지 않고 시나리오 팀을 구성해 상대평가 3팀, 절대평가 1팀이라는 불리한 구성, 즉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되었다. 이로써 상대평가를 지지하는 의제1팀, 의제3팀, 의제4팀은 3배의 발언 시간을 획득하여 상대평가의 취지 및 장점을 설파할 수 있었고 절대평가 지지의 의제2팀을 집중적으로 견제하고 비판하는 과정이 연출되었다. 이번 대입공론화의 목표가 ‘미래 지향적이면서 현실 적용가능한 대입제도 설계’임에도 의제1팀 등의 요구에 의해 ‘미래교육’에 대한 설명 자료를 제공하는 기회가 박탈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입 공론화 과정은 첨예한 갈등이 존재하는 문제를 공론화할 때 갈등의 양상만 확인하는 공론(空論)이 연출되는 상황을 온 국민 확인한 셈이다. 그 결과로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학교교육을 혁신하겠다는 정책 목표가 실종되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공론화를 계속 진행하는 것이 옳은가? 그리고 공론화를 통해 아무런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는데도 여론을 의식해 잘못된 결과를 발표하는 상황은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우선 교육문제와 관련해 공론화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교육단체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공론화가 진행될 경우 결과 도출에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되는 상황에 대한 견제 장치가 전무한 상황과 공론화 결과가 공론화 목적을 왜곡하는 상황에 대한 견제 장치가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