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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 논란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현안과정책 270호

글/박동천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인사청문이 있을 때마다 우리 사회의 공론장에서 커다란 논란이 벌어진다. 잡다한 감정의 표현들을 제치고, 진지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는 논제에 시선을 모으면, 한 가지가 눈에 띈다. 미국의 청문회 제도를 본보기로 삼아 우리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개선책이지만, 제도의 바탕에서 작용하는 문화적 특성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미국의 제도는 나름의 역사를 통해 진화한 결과다. 둘째, 한국에서도 국회 동의가 헌법적으로 필수 사항인 경우에는 의결로써 논란이 정리된다. 다만, 장관 등에 대해서도 국회 동의를 필수화하려면, 헌법 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셋째, 우리 사회에는 고위 공직의 임명을 개인의 과거 행적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고, 인사 논란은 잠시 들끓다가 이내 다른 쟁점에 묻혀 쉽사리 잊히는 문화적 경향이 있다. 제도 개선론이 실천적 무게를 가지려면 이런 요소들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는, 시선의 방향을 아예 바꿔서, 지금처럼 논란과 망각을 반복하는 방식도, 지금까지 더불어 살아왔듯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들어가며

   대통령이 3월 8일에 7개 부처의 개각 명단을 발표해서 시작한 한 판의 소동이 4월 25일에 끝났다. 아니면, “인사청문 정국”이 “패스트 트랙 정국”으로 이동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여간, 7개 부처 중 6개 부처에 새로운 장관들이 취임했고, 퇴임한 헌법재판관 두 명의 자리도 채워졌다. 그리고 청와대발 인사 관련 뉴스를 가지고 기자들과 논평가들이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광경은 당분간, 다음번 인사청문회까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조선 시대에도 인사 문제는 시끄러운 논쟁거리로, 당파 싸움의 주요 주제였다. 이승만은 1948년부터 1952년까지 이윤영을 국무총리로 네 번이나 지명했으나 그때마다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고위 공직자의 선임을 둘러싼 논란은 그 직위가 중요하다는 반증에 해당한다. 대통령 선거를 위해 온 사회가 적어도 1년 이상 시끄러운 논쟁을 거치지만, 이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으로 대부분 받아들인다. 국무총리, 대법관, 헌법재판관, 장관, 검찰총장, 등등, 임명 전에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 직책들도 대통령만큼은 아니지만 대단히 커다란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들이다. 그러니 그 직책에 앉을 사람을 선임하는 과정에, 대통령 선거만큼은 아니지만,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인사에 관한 논란이 무성해질 때면, 우리 사회의 언론은 으레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논란을 중계하고 확산시키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런 논란은 없어야 맞다는 듯, 인사를 잘못해서 제도가 엉망이라서 논란이 벌어진다는 듯, 우려를 쏟아낸다. 우려에는 대통령이 부적격자를 지명했다는 의미와, 청와대의 인사 관련 참모들이 무능하다는 의미와, 국회의 인사청문회 제도가 잘못 되었다는 의미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우려에 초점이 없다 보니,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에 관한 초점도 없다. 마치 하나의 파도를 바람과 조류라는 외생 변수에 의해 다른 파도가 밀어내듯이, 인사청문이라는 하나의 화제는 신속처리법안 지정을 둘러싼 “동물국회”라는 화제로 대체되었고, 이제는 그조차 다시 “삭발투쟁”으로 대체될 모양이다.

  열린 사회의 공론장이라는 게 이처럼 외생 변수에 의해 파도가 연이어 밀려오듯 끝없이 이어지는 화제들을, 내면으로 파고들어 해결하기보다는, 다만 소비하고 넘어가는 경향을 가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주변에 나름 진지한 관심사가 없지도 않다. 인사청문회 제도의 개선 방안을 구상하는 과제와 함께, “문제”를 발견해서 “우려”하기를 주특기로 삼는 우리 사회의, 특히 식자연하는 사람들의, 습관 역시 진지하게 성찰해볼 만한 논제다.


인사청문회 제도의 개관

  

국무총리나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조항은 제헌헌법부터 있었다. 감사원이 헌법 기관으로 들어간 6차 헌법에서부터 감사원장의 임명 역시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세부 사항에서는 변천이 있었지만, 어쨌든 대통령이 지명하는 인사가 국회의 표결을 통과해야 하는 제도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줄곧 있었고, 그에 따른 논란도 줄곧 있었다.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임명할 수 있는 직책의 수는 헌법이 개정될수록 점차로 증가하여, 현행 헌법에서는 국무총리,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의 동의를 거치도록 정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 3인과 중앙선거관리위원 중 3인을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정했다.

  인사에 관한 논란을 공식화하고 확대한 계기는 2000년 6월에 제정된 인사청문회법이다. 국회의 동의가 필수적인 직책들과 국회가 선출하는 직책에 관해, 본회의 표결에 앞서서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후보자들의 인격과 역량을 검증하기 위한 공식적인 절차가 필수화되었다. 청문회란 일종의 재판이고, 특히 인사청문회는 개인의 신상과 행적과 사상이 도마 위에 오르는 민감한 측면을 가지기 때문에, 후보자의 출석 여부, 청문회의 공개 여부, 그리고 질문의 범위와 답변 의무 등과 관련해서 엄밀한 한계와 기준이 설정되지 않으면 당사자를 욕보이는 행사와 구분하기가 어렵다. 우리 인사청문회의 (아마도 피상적으로)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관에 대한 상원의 인준은 처음부터 있었으나, 상원 표결에 앞서 청문회가 열린 것은 1873년이 최초로서, 그 뒤로 1955년까지는 청문회 없이 표결한 경우도 많고 청문회가 열려도 후보자가 직접 출석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청문회는 추문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청문회를 열지 않는 것이 후보자에 대한 예의로” 간주되었고, “공개 심문 자체가 하나의 모욕이라는 생각이 명백히 남아 있었다.”

  우리 인사청문회법은 나아가,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국무위원,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국가정보원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합동참모회의 의장, 한국은행 총재, 특별감찰관, KBS 사장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도록 정하고 있다. 다만 이들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를 거치되 본회의에서 표결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든지 또는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아예 채택되지 않든지 대통령의 임명권을 제약하지는 않는다.

  인사청문회와 관련된 논란 가운데 많은 부분이 이 대목에서 발생한다. 어차피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텐데 청문회를 왜 하느냐는 소위 무용론이 여기서 나온다. 청문위원 다수가 부적격으로 판정해도 어차피 대통령이 임명하면 그만이라는 핑계로, 청문위원 소수가 경과보고서 채택 자체를 거부하면서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편리함도 여기서 나온다. 그리고 이는 다시 다수결의 원리가 “날치기”와 쉽게 동일시되는 한국 국회의 문화적 관습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이를 논하기 전에, 잠시 영국과 미국의 제도를 우리 제도와 견주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과 미국의 인사청문회

  군주정 시대의 영국에서 의회가 성장하면서 고위 공직의 인사 문제는 점차로 왕과 의회 사이에 분쟁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이 문제는 내전과 명예혁명을 거친 이후에야 비로소 왕이 의회의 뜻을 반영해서 내각을 꾸린다는 관습으로 정착되었다. 왕이 상징적인 존재로 물러나고 수상이 실권을 행사하게 된 이후에도, 영국의 수상은 여전히 형식적으로 왕에 의해서 임명된다. 왕이 의회의 뜻을 존중하는 방식은, 의회의 표결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총선거에서 또는 집권당 내부의 투표에 의해서 다수당의 대표로 결정된 사람에게 왕이 조각(組閣)을 위임하는 형태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해진 수상이 장관 자리에 누구를 앉힐 것인지는 다수당 내부의 역학 관계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고, 다수당 내에서 정해진 사항이라면 의회에서 당연히 통과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의회에서 논의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현대 영국에는 장관이나 법관 등 고위 공직자의 임명에 대해 의회가 명시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선거, 정당, 의회 등을 통해서, 인민 다수의 의사가 정치적 결정으로 이어지는 대의적 정치 과정 안에 다수당의 주도권이 이미 충분히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2008년부터는 장관 아래의 직책들에 대해서 하원의 소관 상임위원회가 인사청문(Pre-appointment Hearings)을 실시하는데, 본회의 표결을 거치는 것은 아니고 해당 상임위원회가 의결로써 의견을 표명하며, 부적격 의견이 나오더라도 임명이 반드시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영국 의회의 웹페이지에 따르면, 2007년 7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96차례의 인사청문회가 있었는데, 부적격 판정은 5회였고, 그중 3명은 임명되었고, 한 명은 스스로 사퇴했고 한 명은 지명이 철회되었다. 당연히 일각에는 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의 인사청문회는 일차적으로 미국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제도는 여러 면에서, 그리고 아주 깊은 의미로, 우리 제도와 다르다. 미국의 연방헌법은 제2조 2항 2절(Article II, Section 2, Clause 2)에, “대통령은 대사, 장관, 행정관, 대법원의 판사들, 그리고 미국의 여타 모든 직책들을 지명하고, 상원의 조언과 동의에 의해 임명한다”고 정했다.

  미국 상원이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간여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는 오직 이것뿐이다. 애당초 미국에는 한국의 국회법에 해당하는 법률이 없다. 미국 연방의회의 구성과 회의는 연방헌법 제1조에 규정된 대원칙들에 의해 규율될 뿐이고, 선거에 관한 자세한 사항들은 각 주의회에서, 그리고 회의에 관한 자세한 사항들은 의회 내부의 자체 결정에 의해서 규율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직책에 대해 인준 표결을 할 것인가, 표결에 앞서 청문회를 열 것인가, 청문회를 공개할 것인가, 후보자를 불러서 심문할 것인가, 등등의 문제는 상원 자체의 규칙으로 정해진다. 그리하여 연방대법관 후보에 관해 1873년까지는 청문회 없이 상원 본회의 표결만 있었고, 후보자가 법사위원회에 출석해서 증언한 최초의 사례는 1925년이며, 청문회와 출석이 정례화된 것은 1955년의 일이다. 이러한 제도의 변화는 상원 자체의 규칙에 따라 이뤄졌다. 오늘날, 대통령이 지명한 공직 후보자에 관해 상원의 인준이 필요한 직책의 수는 1,200 내지 1,400개로 알려져 있다.


의결의 여부

  미국 상원은 대통령이 지명한 공직 후보자에 관해, 연방헌법에 의해서, 인준 여부를 표결한다. 상원에서 부결된 후보는 취임할 수 없다. 한국 대통령도 헌법에 정해진 직책들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얻지 못한 후보를 임명할 수 없다. 이처럼 국회의 동의가 필수적인 인사에서 지명된 사람 수에 대비한 낙마율을 보면, 각각 <표1>, <표2>, <표3>과 같다. 미국의 경우는 편의상 연방대법관과 장관급 후보자만을 집계한 결과다.

<표1, 한국 국회 인준 결과, 2000년 6월 이후>



지명

취임

낙마

낙마율

 비고

국무총리

20

13

7

35%

 부결 2, 사퇴 4, 미처리 1

대법원장, 대법관

48

47

1

2.1%

 사퇴 1

감사원장

7

5

2

28.6%

 부결 1, 사퇴 1

헌법재판소장

7

5

2

28.6%

 철회 1, 사퇴 1

합계

82

70

12

14.6%

 부결 3, 철회 1, 사퇴 7, 미처리 1


<표2, 미국 상원 인준 결과, 1789년 이후>



지명

취임

낙마

낙마율

비고

연방대법관

144

114

30

20.8%

부결 11, 사퇴 5, 철회 5, 미처리 6, 무효 2, 사망 1

장관급


최소700

24

3.3%이하

부결 9, 철회 및 사퇴 15

합계


최소814

54

6.2%이하



<표3, 미국 상원 인준 결과, 1955년 이후>



지명

취임

낙마

낙마율

비고

연방대법관

32

26

6

18.8%

부결 3, 철회 1, 미처리 1, 무효 1

장관급

376

362

14

3.7%

부결 2, 철회 및 사퇴 12

합계

408

388

20

4.9%



  우선,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관 후보의 낙마율에 비하면 장관 후보의 낙마율은 매우 낮다. 연방대법관이 종신직이라 미국 정치의 장기적인 풍향에 대단히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장관은 결국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참모직인 만큼 어지간하면 대통령의 의중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국무총리 후보의 낙마율이 가장 높고, 감사원장과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낙마율도 상당히 높은 데 비해,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의 낙마율은 매우 낮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여과를 거쳐서 국회의 동의가 요청된다는 점, 과거 같으면 사법시험을 합격한 소수 엘리트 집단으로서 법률가들의 전문성을 우리 사회가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물론 국무총리, 감사원장,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경우도, 인사청문회 시행 이후로는 불과 20여년의 역사에다가 전체 사례도 많지 않기 때문에, 낙마율이 제도 자체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지난 20년간 한국 정치의 여야 갈등이 비교적 치열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미국의 낙마율과 한국의 낙마율을 단순 비교해보면, 현저한 차이랄 것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부결을 통한 낙마를 보면 차이가 더욱 줄어든다. 미국의 경우, 부결을 통한 낙마는 과거에 비해 인사청문회가 정례화된 1955년 이후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의 낙마율이 전체적으로 미국에 비해 약간 높지만, 부결을 통한 낙마만을 보면, 분모를 지명자 전체로 잡든지 낙마 사례만을 잡든지, 그 차이가 훨씬 줄어든다.



지명

낙마

부결

부결/지명

부결/낙마

한국

82

12

3

3.7%

25%

미국(1789년 이래)

최소 814

54

20

2.5%이하

37%

미국(1955년 이래)

408

20

5

1.2%

25%

<표4, 한국과 미국의 부결을 통한 낙마>

   미국에서 나타나는 낙마 사례들은 대통령의 정당과 상원 다수당이 다른 소위 분점 정부의 시기에 당연히 더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반대당이 상원을 장악했다고 해서 그저 대통령의 인사를 훼방만 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정당이 상원 다수를 차지한 경우에도 낙마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낙마율을 전체적으로 떨어뜨리고, 특히 부결을 통한 낙마의 비율을 더욱 떨어뜨리게 되는 요인으로는, 정당간 의석 분포라는 요인에 덧붙여서, 책임을 가급적 상대에게 지우려는 정략적 계산을 들 수 있다.

  대통령의 인사를 국회가 저지하는 것은 책임이 뒤따르는 행위다. 논란이 벌어지는 와중에 만약 지명을 철회하거나 후보자가 사퇴한다면, 책임 소재가 분산된다. 반면에, 공식적인 표결을 통해서 임명을 저지하게 되면, 결과 여하에 대한 책임의 소재가 명백히 국회로 그리고 반대당으로 귀착된다. 대통령의 인사에 상원의 동의가 필수적인 미국에서, 230년의 역사를 통해 낙마율이 6.2% 이하고, 부결을 통한 낙마는 2.5% 이하인 까닭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의 인사를 저지하여 의회가 결과에 책임을 지기보다는 대통령의 인사를 묵인해 주고 나서 결과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에게 묻는 편이 정치적으로 편리하다.

  이와 같은 고찰을 거쳐 생각해보면, 한국의 인사청문회가 정처 없는 논란과 고삐 풀린 의혹 제기로 야단법석이다가, 막상 임명이 이뤄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화제로 여론의 관심이 신속하게 이동하는 연유도 짚어낼 수 있다. 국회 동의가 필수적인 경우에는 여하간에 정해진 기간 안에 가결 아니면 부결로 결판이 난다.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지 않은 경우들에서, 본회의 표결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청문위원회 의결도 강제력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아예 청문경과보고서 자체를 채택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무책임의 자유가 작용하여, 결정을 내리지 않는 만큼 무성한 말의 성찬이 조장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인사에 반대하는 당이 만약 청문위원회의 다수를 차지한다면 오히려 청문경과보고서의 채택을 회피하지 못할 요인이 생긴다. 반대 의견이 다수라면 부적격으로 경과보고서를 채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무책임의 자유는 반대당이 소수일 때 전형적으로 극대화된다. 경과보고서가 부적격 의견으로 채택되는 것이 아니라, 적격하다는 다수 의견에 단지 부적격하다는 소수 의견이 첨부되는 수준일 바에는 아예 경과보고서의 채택 자체를 거부하는 편이 반대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만들면서도 반대로 말미암아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에 책임질 일도 없는 일석이조가 된다. 더구나 소수의 반대를 대통령이 무시하는 것을 두고 “국회를 무시한다”고 과장할 수사학적 여지도 열린다.

  물론 청문위원회의 다수가 의결을 강행하면 소수의 사보타지 때문에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국 국회의 70년 역사를 통해 여야 합의가 아닌 다수결에 의한 의안 상정은 “날치기”와 동일시 되어 왔다. 최근까지도 이러한 혼동의 주역은 소위 민주화의 주역이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었다. 국회 70년사에서 이들이 주로 소수파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20대 국회에서, 말하자면 우연히 일시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라고 해서, 정의당과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의 우호적인 표를 합하면 과반수 내지 5분의 3선을 넘길 수 있다고 해서, 다수결을 강행할 수만은 없는 역사적/문화적/사상적 금제가 있다.


제도적 개선책에 관하여

  인사청문회에 관해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으레 개선책을 제안한다. 최근에 나온 개선책 중에는 국회의 동의를 필수요건으로 삼자는 제안이 있다. 방금 위에서 논의했듯이, 국회의 동의를 필수요건으로 만들면 후보를 지명할 때 대통령의 책임감이 더욱 무거워지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국회 인사청문회의 책임감도 더욱 무거워질 것이 분명하다. 아울러, 다수결의 원리가 의회의 핵심 규칙으로 확립되지 못하여, 제1야당이 출석을 거부하면 여간해서 표결을 시도하지 않는 관행, 그리고 출석을 거부하던 제1야당이 막상 다수파가 표결을 시도하면 물리적으로 회의장을 점거하는 관행이 자리 잡은 한국 국회에서는 국회의 임명동의가 필수사항이 된다면, 어떻게든 표결로써 논란이 종결되는 소중한 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반론에 충분한 일리가 있다. 여기에는 미국과 한국의 헌법 체계가, 다시 말해서 의회(국회)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다른 까닭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미국 연방헌법은 사실상 대통령의 모든 인사에 대해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받으라고 정해놓고 있다. 이미 영국에서 의회주권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식민지 시대에 자치 기구로 마을과 주에서 의회 정치의 경험을 익혀왔으며, 독립전쟁기에 독립전쟁을 수행할 지휘기관으로 대륙의회를 창설해서 운영해본 경력을 통해서, 의회가 당연히 주권적 대의기관이라는 이념이 의식의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인사에 대해 어떤 형태의 “조언과 동의”를 어떤 절차를 통해서 제시할지는 그야말로 입법부인 의회가 스스로 정할 일이므로 헌법에 규정할 필요도 없었고, 나아가 의회로서도 그것을 특별히 법률(Act of Congress)로 정해서 스스로 족쇄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이에 비해 한국 헌법은 처음부터 국회에게 인민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대표하는 주권적 대의체라는 위상을 부여하지 못하며, 국회 및 국회의원들의 역량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외부적 안전장치로서 국회에 대해 많은 규제를 헌법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그러한 규제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통령의 인사 중에 일부에 대해서만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고 명시하는 조문들이다. 국무총리와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데 비해,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헌법재판소장이 아닌 헌법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는 한, 후자의 경우에도 국회 동의를 못 얻으면 임명할 수 없도록 정하는 법률은 위헌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물론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 조문에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는 의미가 포함된다고 해석하기로 여야가 흔쾌히 합의하고, 여론이 또한 압도적으로 그 합의를 지지한다면, 그리하여 그와 같은 역사적인 민족적 결단을 입법의 배경으로 명시해서 기록에 남긴다면, 장차 위헌 시비가 나오더라도 물리칠 수 있는 근거는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현실에서 그런 합의가 이뤄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면 개헌도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개선책으로 거론되는 방안 중에는 청문회 기간을 늘린다든지, 도덕성 검증과 정책 검증을 분리해서 도덕성 검증은 가급적 비공개로 하자는 얘기들도 있다. 나름 충분히 일리 있는 제안이고, 현재보다는 개선된 결과를 낳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렇지만 논란이 정리되기보다는 확대 재생산되고, 후보자들의 소신이나 정책적 역량에 관한 논의보다는 개인사와 관련된 추문들 또는 추문의 의심이 무절제하게 공표되는 경향 자체는 이런 정도의 변화로 방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된 원인으로는,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특색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고적/보상적 임명

  고위 공직 인사와 관련해서 우리 사회가 드러내는 현저한 특색 하나는 공직 임명이 전망적/정책적인 문제보다는 회고적/보상적인 문제로 흔히 인식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직책에 어떤 후보자가 지명되었을 때, 그 사람이 여태까지 무슨 일을 해왔기에 그처럼 높은 관직을 하나의 상으로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방향이 관심의 주조를 이룬다.

  재산이 많은 사람, 특히 유명한 재벌가의 후손도 아닌데 의외로 모은 재산이 많거나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단순히 부유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는 풍조가 바로 그러한 관심을 증명한다. 부유한 것이 잘못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유독 공직자 검증이라는 이름 아래서는 갑자기 청빈을 강조하기 시작하는데, 그조차도 지극히 고무줄 잣대로 대부분에게는 슬그머니 넘어갈 만한 축재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더 이상 가혹할 수 없게 적용된다.

  이런 문화가 형성되기까지 물론 많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와 군부독재를 지나오는 동안에 부의 축적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다. 위장전입, 병역기피, 논문표절 등, 차단선으로 늘 거론되는 항목들 역시, 지난 시대 이 나라의 정치 권력이 다수에게는 공평성을 강요하면서 그 틈에 소수 특권층이 기생했다는 인식 때문에 특히 비난의 표적이 된다.

  그렇지만 과거의 행적을 어디까지 소급해서 파헤쳐야만 하는 것일까?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어릴 때 교회 헌금포대에서 돈을 훔쳤다는 사실을 선거가 한창일 때 고백했다. 당시 미국 유권자들은 이러한 중대 범죄를 저질렀으니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기보다는, 그의 정직함을 높이 사서 당선의 영광을 베풀었다. 세상에는 도덕적으로 별로 자랑스럽지 못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처벌해야 할 것까지는 없는 일들이 많다. 축재든, 위장전입이든, 어떤 다른 혐의든, 법에 의해 유죄로 판정해야 할 정도가 아니면 당연히 아무 문제도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공평하다.

  투자는 괜찮은데 투기는 안 된다는 식의 기준도 감정에 사로잡혀 이치를 보지 못하는 전형적인 혼동에 해당한다. 미래란 본시 불확실한 것이고,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감각과 기질과 정보 또는 오산에 따라 나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나름대로 신중하게 처신한다. 다만 가지고 있는 자금을 같은 값이면 더 잘 활용해서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보통 사람들의 인지상정이다. 이 점을 일반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기어이 투자는 선이고 투기는 악이라고 고집하게 되면, 남는 것은 내가 돈을 벌면 투자를 잘해서고 남이 돈을 벌면 투기 때문이라는 유치무비한 이중기준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고위직 인사가 화제로 떠오를 때마다, 분란과 의심이 횡행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까닭이 이와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에게나 성자의 기준을 들이대는 혼란스러운 감정들, 과거 시대가 불의했다는 인식 아래 그 시대에 호의호식한 자들은 적어도 더 이상 출세하면 안 된다는 분풀이, 내가 일해서 번 몫은 깨끗하지만 남이 벌어들인 것으로 보이는 몫은 뭔가 더러운 것 같은 불신감 등이 인사청문과 관련된 공론장의 질서를 크게 어지럽힌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의 문화적 특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는 최근 20여년을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고, 그 사이에 이 때문에 큰 변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가 벌어지는 즈음에는 온갖 추문들을 화제로 삼아 시끄럽게 떠들다가, 임명이 이뤄지면 금세 잠잠해지는 패턴을 반복하는데도 특별한 사고는 나지 않는다. 둘째,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고칠 것인가? 이런 문화가 언젠가 바뀔지도 모르나, 가까운 미래에는 아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무슨 설교나 캠페인으로 일어나기보다는, 사람들 각자가 스스로 이런 풍조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해야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 그런 날이 장차 올지 말지는 그때 가서 따지거나 대응할 일이고, 당분간은 지금과 같은 문화 현상을 지켜보거나 즐기는 편이 낫다. 제발 바라건대, 모든 일에 대해서 모종의 문제점을 꼬치꼬치 찾아내고서, 그걸 개선하거나 치유해야 한다고 한탄조로 울부짓는 사람들은 이제 좀 줄어들면 좋겠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