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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에 재현된 가족 변화상

현안과정책 262호

글/강성률 (광운대학교 교수)

  지난 세기 동안 한국 영화는, 특히 가족 문제를 다룬 영화는 한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대중문화보다 영화는 대중들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영화와 사회는 깊은 연관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매체에서 사회 구성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속 가족의 변화를 통해 사회의 변화와 시대적 변화, 나아가 미래의 가족 형태까지 살펴보았다. 흥미롭게도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한편에서는 가부장이 죽은 후 다양한 대안 가족이 등장하는가 하면, 대중이 즐겨보는 천만 영화에서는 아버지의 부재를 그리거나 강한 아버지를 욕망하고 있다. 이 모순적인 현상을 통해 미래의 가족 형태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가족인가?

  가족의 변화 양상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린다. 핵심은 4인 가족이라는, 매우 친숙한 형태의 가족이 이제는 많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1인 가족이 가장 많다고 한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가족 구성원의 숫자대로 1인 가족이 1위, 2인 가족이 2위, 3인 가족이 3위가 되어, 이제 4인 가족은 대가족이 된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사회의 많은 부분도 바뀌었다. 주거 형태는 말할 것도 없고 생활 패턴도 바뀌었다.

  이런 흥미로운 뉴스를 접하면서 한국의 가족 형태가 그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도 직접적인 통계가 아니라 지난 100년 동안의 가족 변화상을 한국영화사를 통해 짧게나마 살펴보려 한다. 한국영화사에 재현된 가족의 변화상을 살펴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는 그 시대의 관객들이 욕망하는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많은 소재 가운데 가족의 변화상을 살펴보는 것은 가족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기 때문에 가족의 변화상을 보면 그 시대의 변화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사를 통해 가족의 변화상

  가족이라는 시각에서 지나간 100년의 한국영화를 살펴보면 결국 가부장제라는 억압적 제도에서 기인한 남성 중심의 폭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성적인 차원으로 좁히자면, 남성 중심의 폭력과 간섭,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성들의 반란의 역사라고 할 수 있고, 아주 구체적으로 작품 명으로 거론하면 <미몽>의 반복적 재현 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의 연이은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미몽>은 일제강점기에는 도저히 등장하기 어려운 영화였다. 조선의 유교적 풍습이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여성의 자유로운 연애와 가출, 일탈을 그린 영화가 등장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당시에 쏟아졌던, 신여성 담론과 자유 연애론에 입각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면서 이런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오히려 영화가 등장할 시기에는 현모양처 담론이 강해지는 보수적인 사회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미몽> 같은 영화가 등장할 수 있었다. 즉, 신여성 담론을 타락한 여성 담론을 경계하고자 하는 의도가 <미몽>에 담겨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의도 때문에 지금 봐도 매우 충격적인 내용의 여성 일탈이 감행될 수 있었고, 이에 맞게 강력한 처벌이 행해질 수 있었다. 때문에 이 영화 직후에는 일제의 병참기지로 변한 조선의 사정을 고려해 군국주의를 체화한 가족이 등장하거나, 황군의 사명을 영광으로 아는 젊은 남성들을 그린 영화들이 연이어 등장하게 되었다. ‘천황제 가족주의’가 조선에 등장한 것이다. 이제 여성은 현모양처를 넘어 총후부인이나 군국의 어머니가 되어야 했다.

  흥미롭게도 해방 후에 다시 <미몽>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일본이 물러간 자리를 차지한 미군은 개인주의와 근대화의 문물을 지니고 해방된 조선 땅에 들어왔다. <자유부인>은 그런 분위기를 보여준다. 가장이 있는 집에서 가정을 지키던 여성이 외부에서 일을 하면서 바람이 나지만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 <미몽>은 자신의 과오 때문에 딸이 죽자 자살하고 마는데, <자유부인>은 잘못을 뉘우치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아들이 눈물로 그녀를 붙잡으면서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미국의 문화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바람이 난 부인을 처벌하고 뉘우치게 할 만큼 유교적 질서는 여전히 공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여성을 집으로 불러들이게 한 것은 여전히 모성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역으로 모성 이데올로기를 저버린 여성은 마땅히 처벌 받아야 한다는 프레임이 공고화된 시대였던 것인데, 이 프레임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1960년대에는 세대 교체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마부>, <박서방> 등을 비롯한 그 숱한 가족희극영화에서 구세대는 근대화의 흐름을 이끌어 갈 수 없는 낡은 세대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신세대에게 밀려났다. 이때 등장한 신세대는 주로 아들과 사위로 구성된 남성들인데, 이들은 박정희 군부정권과 결탁해 새로운 가부장이 되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집안의 가장이 된 새로운 세대가 얼마나 확고한 가부장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젊은 시절 바람이 나서 낳은 아들을 남성은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지만, 두 여성들은 불만을 토로하지 못한다. 제도적으로 남성에게 속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갈등은 아이와 두 엄마 사이에서 발생하고 아버지는 갈등에서 벗어난다. 이렇게 강한 가부장의 시대는 1970년대의 호스티스영화, 1980년대의 성애영화로 무한증식을 하면서 여성을 성적 상대나 관음의 대상으로 그리도록 했다. 한국영화사 가운데 가부장제가 가장 확고했던 시대를 꼽으라면 단연 ‘1970년대 ∼ 1980년대’를 거론해야 한다. 이 시기는 군부 정권이 강한 힘을 발휘했던 시기로 그 어느 시기보다 강한 수직적인 명령 체계로 국가와 사회가 지탱되던 때였다. 이런 시기에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이 되거나, 많은 새마을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동원된 일꾼이 되어야 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1980년대 초에 등장한 <애마부인>은 <자유부인>보다는 <미몽>에 가깝다. 바람을 피운 부인은 남편에게 사죄하거나 스스로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정부와 남편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갈등한다. 이렇게만 보면 <애마 부인>은 한국영화사에서 혁신적인 영화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애마부인>은 남성의 관음증 범위 내에서만 작동한다. 그녀는 철저하게 남성의 손길에서 성애를 느끼고 흥분한다. 그녀는 남성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 것 이다. 심지어 강간을 당하면서도 흥분을 하던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만났음에도 남편에게로 돌아가고 만다.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가정을 무시하던 사람 아니었던가. 결국 <애마부인>은 <미몽>에서 시작해 <자유부인>으로 엔딩을 장식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정사>야말로 ‘혁명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에 와서야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진정으로 실천한다. 고분고분하게 자란 여성은 의외로 늦게 찾아온 사랑과 진실하게 대면한다. 그 결과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유한 환경,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 등을 모두 거부한 채 집을 나오고 만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정부와 함께 떠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와 모성 이데올리기를 모두 버리고서. 한국영화사에서 이 영화에 와서야 비로소 모성 이데올로기에서 어머니가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야 드디어 <미몽>, <자유부인>, <애마부인> 등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성이 누구의 어머니가 아니고, 누구의 부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개인이 된 것이다.

  가부장의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성을 그리려면 먼저 가부장을 스크린에서 죽이는 영화가 등장해야 한다. <바람난 가족>이 그 역할을 했다. 가족이 전부 바람이 났지만 죽어가는 가부장은 더러운 피를 토하면서 자신의 한계에 직면해야 한다. 그는 이제 권력도 별로 없고 육체적 힘도 없어 수명도 다해 간다. 가부장제의 피해자였던 부인은 새로운 연인을 만나 연애에 빠져 있고, 며느리도 아들 몰래 임신을 했다. 정작 바람을 피우고 있던 아들은 자신 때문에 아이도 죽게 되고 나중에는 정부에게도 차이고 만다. 무엇보다 아들은 며느리에게도 버림 받는다. 가부장은 죽고 아들은 이혼을 당해 홀로 살아가지만, 부인은 새로운 출발을 하고 며느리도 새롭게 애를 키우며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가부장은 죽었고 여성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마침내 스크린에서 ‘여성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한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안가족이 등장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일부다처제를 뒤집어 일처다부제를 그린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보여주던 일부다처제가 무너진 뒤,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일처다부제를 그리고 있는 것. 어쩌면 이것은 대모 사회를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혈연주의의 강고한 집착과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가부장의 혈연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그것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결혼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바로 이 지점에 정확히 머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지 영화에서는 혈연주의를 확인한 뒤에야 안심을 하고, 그마저 외국으로 떠나는 것으로 결말을 맺고 있다. 이것은 영화의 한계인가 현실의 한계인가?

  <가족의 탄생>은 혈연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넘어서려고 한다. 혈연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이기주의와 폭력에서 벗어나는 길은 비혈연 가족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성이 배제되고 여성이 부드러운 엄마의 기능을 하는 가족을 만들었는데, 영화 속에 그려진 가족은 그들이 기른 딸을 통해 남을 배려하는 엄마들의 습성을 지닌, 매우 다정다감한 인물로 재현된다. 그런 여성들의 심성은 헤픈 것이 아니라 정이 많은 것이다. 거친 남성들이 도저히 만들지 못하는 가족을 여성들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역시 여성 공동체면서 대모 가족이다. 이래저래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대안가족은 여성이 중심이 되는 가족이다.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는 동성애 가족의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지독히도 강한 동성애에 대한 혐오 속에서 동성애 커플은 부모를 속이고 동료들을 속이면서 거짓 결혼 생활을 유지하다가 판타지에 가까운 스타일로 동성애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마이 페어 웨딩>에서는 김조광수 감독의 실제 다큐를 통해 이들의 결혼식이 얼마나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거꾸로 말하면) 그 고단한 과정을 넘어 결국에는 결혼식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지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이들의 결혼은 합법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싸우고 있다.


천만 영화에 나타난 가부장의 모습들

  2000년대 이후의 한국영화를 보면 가부장이 죽고 가부장제에서 차별을 받던 여성이나 동성애자 같은 약자를 중심으로 한 대안 가족이 활발하게 재현되고 있어, 마치 그런 움직임이 대세인 것처럼 착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대중들이 가장 많이 관람하는 천만 영화를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천만 이상의 관객이 특정 영화를 관람했다는 것은 남녀, 노소, 지역, 종교, 학력 등의 차이를 넘어서는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천만 영화에 재현된 가족 이데올로기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천만 영화의 리스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아버지의 부재’이다. 당장 보더라도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해운대>, <도둑들>, <7번방의 선물>, <인터스텔라>, <국제시장>, <암살>, <신과 함께-죄와 벌>>, <신과 함께-인과 연> 등이 그러하다. 총 20편의 천만 영화 가운데 11편이 아버지의 부재를 그리고 있다. 이런 영화의 내용은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자식이 고생을 하는 내용을 그리거나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한없이 그리워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해하기 쉽지 않은 현상이 있다. 천만 영화 가운데 몇 영화는 강력한 아버지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적 같은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아버지(<명량>), 정의를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아버지(<변호인>),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아버지인 재벌 회장(<베테랑>), 백성의 어버이인 왕(<광해, 왕이 된 남자>),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가 딸을 기쁘게 하는 경찰 아버지(<극한 직업>) 등이 그렇다. 두 현상은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은 현상을 다르게 해석한 것도 같은데,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 부분에서 눈여겨 볼 것은 어머니의 재현이다. 아버지가 부재하나 지나치게 강한 아버지가 등장하면, 모성으로서의 어머니를 그려 평안한 가족 이미지를 스크린 속에 재현하는 것이 정상적인 가족이고, 가족 이미지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성의 존재로서의 집, 그 따뜻한 품이 천만 영화에는 없다. 어머니는 죽었거나 떠났거나 조용한 존재들이다. 어디에도 모성의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천만 영화는 아버지의 부재나 고난에 처한 아버지의 상황을 그려 비극적 정서를 극대화하고 있는 영화들이다. 이런 서사에서 어머니는 존재감이 없거나 약하다. 이런 재현은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그리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적 이미지로서의 현대 아버지는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면서 가속화된 가장의 위기는 가족의 위기가 되었고, 그런 위기를 영화는 신파적 정서로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천만 영화가 이런 정서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아직도 근원적으로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기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영화는 지금 퇴행적이다.


어떤 가족이 등장할 것인가?

  간략하게 요약하면, 2000년대 이전까지 한국영화는 가부장과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에 주목했다. 시발점이 <미몽>이었고, 다음이 <자유부인>이었다. 이후 영화들은 가부장 질서와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두 편의 영화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려고 했고, 드디어 <정사>에서 성공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천만 영화를 보면 여전히 가부장을 그리워하거나 그가 없어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앞으로의 가족 형태는 결국 두 종류의 영화가 재현한 그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이것만은 명확하다. 지금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는 1인 가족이나 2인 가족의 범람, 즉 결혼을 하려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들의 생각이 투영된 가족의 형태가 많아지는 것은 두 상황에서 공히 영향을 받았다고. 가부장제의 그 엄한 질서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결혼의 거부와 출산의 거부로 이어져 생긴 현상이고, 한편으로는 경제를 지탱해 주던 강한 아버지가 사라진 상황에서 결혼을 할 수 없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세대의 현실이 반영된 현상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더라도 앞으로의 가족 형태는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형태로, 지금보다 더 빠르게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한국영화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