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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과 문화적 기억 정치: 1980년에서 2020년까지, 그리고 이후

현안과정책 316호

글/박현선(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 연구소 HK연구교수)


1. 2020년, 두 개의 광주

필자는 지난 4월과 5월 두 번에 걸쳐 광주를 방문할 일이 있었다. 올해 첫 방문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서울특별시와 광주광역시 공동주최의 영화제를 준비하기 위한 사전답사였고, 5월에는 사적인 일정으로 조선대학교에서 초청강연을 하게 되면서였다. 이 두 방문에서 필자는 광주의 두 얼굴을 조우했다. (아래 두 단락은 다소 개인적인 일화를 담고 있어 시간이 없는 독자는 바로 다음 부분으로 건너가기를 권한다.)

먼저 사전답사의 형식으로 방문하게 된 장소들은 모두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곳들이었다. 광주국군병원과 505보안부대로 두 곳 모두 5·18 사적지 시설물 보호구역으로 입구의 철문에는 모두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었고, 특수한 방문만을 허용한다. 광주국군병원은 1980년 당시 부상당한 시민들을 수용했던 시설로 치료를 받으면서도 조사를 진행했던 아픔의 장소이다. 서구 쌍촌동에 자리한 505보안부대 옛터는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진압군의 실질적인 지휘본부로 구타, 고문, 가혹행위가 자행된 곳이다. 광주국군병원과 505보안부대를 방문한 그 날의 기억은 단순히 답사 그 이상의 충격을 필자에게 안겨주었다. 하얀 유령처럼 서 있는 광주국군병원은 발을 들여놓는 것만으로도 으스스한 폐허의 기운을 내뿜었고, 특히 505보안부대의 지하실 문을 여는 순간 날카롭게 폐부를 찌르던 공포는 잊을 수가 없다. 지하로 난 계단은 완전히 캄캄한 복도와 크고 작은 밀실들로 연결되고 그 어둠 속에는 당시 구타와 고문의 흔적들, 소리없는 고통이 아직도 담겨 있었다.

두 번째 광주의 기억은 초여름의 짧은 저녁시간에 이루어졌다. 예정된 발표를 마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근의 식당가에서 저녁을 먹은 나는 광주송정역으로 향하기 전 잠깐 시간을 이용해 도청 앞 분수대 광장을 거닐고 싶어졌다. 지난 3년간 5월이면 꼭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주변은 어두웠지만 분수대는 여러 색의 조명 속에서 활기차게 물을 뿜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 저편에서는 몇몇 십대 아이들이 보드를 타며 여러 가지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5월 18일이면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도청, 분수대, 전일빌딩 일대를 가득 채우던 애도와 비장함의 기운과는 전혀 다른, 평범하고 일상적인 십대들의 활기찬 기운이었다. 이들이 보드를 타며 바닥을 미끄러지는 소리와 분수대의 물줄기는 다시금 내게 유령적 기운을 던졌지만 그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기억들이었다.

옛 광주국군병원

2.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던지는 세 가지 질문

“동시간대, 그러나 두 개의 광주”라는 인상을 남긴 방문은 1980년에서 2020년에 이르는 40년의 세월동안 변해가는 것들, 그러나 여전히 녹슬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올 초부터 필자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열린 국제영화제 <시네광주 1980>의 집행위원으로 영화프로그램과 부대행사들을 기획하고 집행했다. ‘서울의 봄, 광주의 빛’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오월평화페스티벌> 기간에 열린 이 영화제는 서울시와 광주시가 처음으로 공동주최한 행사라는 점과 코로나19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진행된 국내 최초의 온라인 영화제였다는 점에서 많은 것이 새로웠다.1) 형식적인 면이나 외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광주의 경험을 직접 겪고 그 정신을 직통으로 전승받은 이들을 위한 기념행사가 아니라 사태를 직접 겪지 않은 이들과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의 기억을 전하는 데 기획을 집중했고, 무엇보다도 다음 세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건드릴 수 있는 변곡점을 마련했다.

첫째, 40년이 지나도록 과거청산과 진상규명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현시점에서 이를 위해 싸우는 것과 동시에 동반되어야 할 문화적 실천은 무엇인가?

둘째,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광주를 넘어 춘천, 부산, 서울로 이어져 변화를 추동했듯이, 글로벌 맥락에서 1980 민주화운동의 기억은 어떻게 세계와 만났고 앞으로 그 지평을 넓혀갈 것인가?

셋째, 역사적 트라우마가 안고 있는 제한된 상상력을 극복하고 대안적 기억담론과 시민 영역의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는 가해자/피해자의 대립구도를 극복할 것, 남성중심적이고 관주도적인 기념화를 벗어날 것, 또한 시민적 공론장으로서 포스트메모리의 매체 가능성을 상상할 것 등 다양한 의제들이 포함된다.


3. 5·18의 문화적 실천과 포스트메모리

먼저, 광주민주화운동의 문화적 실천과 관련해서, 우리는 1980년 이후 40년이라는 시간동안 성숙한 5·18 민주화운동의 궤적을 문화와 예술 운동의 차원에서 되돌아보는 필요가 있다. 영화제 자문위원이자 국가폭력과 의문사 사건에 대한 연구를 펼쳐 온 정원옥 선생과 논의하던 중 나온 이야기로, 역사적 기억의 문제는 무관심과 망각과의 싸움이며, 더 나아가 이 문제를 어떻게 개인적인, 집단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기억의 행위로 이끌어 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마리안 허쉬(Marianne Hirsch)는 ‘포스트메모리’(postmemory)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 바 있다. 그녀는 이를 “문화적 또는 공동체적 트라우마적 사건들과 경험들에 대한 또 다른 후세대의 기억”로 정의한다. “포스트메모리는 세대 간의 거리라는 측면에서 기억과는 구별되며, 깊은 개인적인 연관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역사와도 구별된다. 포스트메모리는 기억의 강력하고 매우 특별한 형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상 또는 출처와의 연관성이 회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상적인 몰두와 창조를 통해서 중재되기 때문이다.”2)  ‘포스트메모리’라는 틀을 통해서 광주의 기억을 확장함으로써 세대와 지역을 넘어서 모두의 민주화운동을 위한 기억공간을 이야기보아야 한다.

포스트-기억정치학의 접근은 진실의 제도화 과정에서 파생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윤리적 물음과 도덕적 딜레마들을 현재적 시점에서 예리하게 포착하고 재현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다음 세대 기억의 주체를 새롭게 구성하는 데 단초가 된다. 마찬가지로, 민주화운동의 재현과 기억을 둘러싼 실험들은 그 기억과 재현의 역할 역시 엄격한 의미의 과거사 청산이나 몇몇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확장됨으로써 더욱 생생한 기억이 되어왔다. 그리고 그 문화적 실천의 힘이 21세기의 전환기에 한국사회를 변혁하는 데 주춧돌이 되어왔다.

<시네광주 1980>의 기획 프로그램인 국제포럼 <민주화운동과 포스트메모리>는 영화와 문화, 예술의 영역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어떻게 항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5·18의 이야기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학과 예술운동을 촉발시켜 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각 강연 동영상은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포럼에 초청된 12명의 국내외 학자들은 지난 40여년의 시간동안 탐구되어 온 5·18민주화운동의 재현과 기억 실험을 영화와 미디어, 공공 기억, 글로벌 민주화 운동의 측면에서 논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영화미학과 광주의 의미>를 주제로 포럼 강연을 한 남인영(동서대 교수)는 5·18 광주 항쟁 당시 독립다큐멘터리 운동은 영화 미디어가 직접적으로 역사를 재현하고 사람들의 공동의 감각을 일깨우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를 거쳐 최근까지, 다큐멘터리 영화미학을 단계별로 살펴봄으로써, 남인영은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과 비민주적 국가폭력을 현장 체험을 통해서 느끼던 세대들 의 경험이 점차 포스트-정체성의 세대로 이어지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특히, 2010년대 이후 나온 다큐멘터리의 경우, 광주의 기억이 없는 세대들이 어떻게 광주의 기억에 접근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영화미학과 광주가 만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고 있다.


4. 글로벌 지평에서 본 광주민주화운동

두 번째 질문과 관련해서 우리는 광주민주화운동이 결코 ‘국내 문제’로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1980년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한츠페터, ABC뉴스의 짐 로리 등 해외 언론인들이 위험을 무릎쓰고 광주학살을 기록한 영상들은 ‘광주 비디오’라는 이름으로 일본과 미국에서 먼저 알려졌다. 이후 이 기록물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광주의 기억은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의 뜨거운 도화선이 되었다.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은 홍콩과 대만, 남미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다른 지역들에서의 국가 폭력과 비-민주적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글로벌 운동들과 연대해왔다. 홍콩 시위에서 불리워졌던 ‘님을 위한 행진곡’과 1980년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벌어진 국가폭력과 민주화운동을 광주의 기억과 연결하는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좋은 빛 좋은 공기>(2020)는 그 분명한 예들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폭력 정치와 비슷하다. 내년이면 45주년을 기록하는 군부독재탄압은 3만명이 넘는 아르헨티나인들이 정부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실종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지난 몇 십년간 이를 기억하고 재현하는 문화적 실천은 정의를 찾고 국가의 폭력을 잊지 않기 위한 아르헨티나인들의 노력의 중심에 있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시네광주 1980>의 영화프로그램은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글로벌 초청전이었다. 이는 단순히 영화제에 해외영화를 포함해 상영한다는 의미 그 이상을 지니고 있으며 많은 노력과 끈질긴 인내 속에서 성사된 섹션이었다. 이 섹션에 초청된 해외 장편영화들은 1965년 백만여 명이 사망한 인도네시아 군부정권의 대학살을 다룬 <침묵의 시선>(조슈아 오펜하이머, 2014), 홀로코스트 영화로 잘 알려진 클로드 란츠만의 영화 <쇼아, 네 자매>(2018), 그리고, 1994년 르완다의 제노사이드에서 희생당한 이들과 그 생존 가족의 모습을 담은 <잃어버린 얼굴들>(표트르 시플락, 2017)로, 모두 국가폭력과 민중의 항쟁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들과 병치해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은 국내의 작품들을 살펴보는 일은 앞으로 우리가 광주의 기억을 어떻게 글로벌 맥락에 논의하고 다른 국가의 시민들과 함께 연대할 것인가를 가늠하게 한다.

글로벌 맥락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확정하는 것만큼 중요한 작업은 동아시아 정치구도 속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재배치하는 일이다. 나오키 사카이(코넬대 교수)의 지적대로, 5·18은 냉전 정치 구도의 지배에 놓인 전후 아시아 국민국가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구조적 모순에서 파생했다. 전후 팍스 아메리카의 헤케모니는 동아시아에 민족주의와 식민주의가 공존하는 상황을 만들어냈고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은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이념을 향한 민중들의 열망을 탄압하고 약화시켰다. 이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접함으로써 비로소 일본과 다른 나라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나오키 사카이의 고백에 근간을 이룬다.

표토르 시플락의 <잃어버린 얼굴들> 중

5. 시민적 공론장으로서 문화적 기억을 전환하기

광주 민중 항쟁은 1980년대 중반부터 당시 "광주 비디오"라고 불렸던 영상물을 비롯해서 80년대 후반, 1990년대의 <칸트씨의 발표회>(1988), <황무지>(1989), <오 꿈의 나라>(1990) 등 다큐멘터리, 1996년의 <꽃잎> 등 극영화로 처음 제작되고 2017년 <택시 운전사>의 경우 천 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그간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되고 재현되어 왔다. 물론, 정근식(서울대)의 지적대로, 1980년 5·18항쟁이 끝난 이후 항쟁의 경험과 기억을 재현한 영화가 출현하기 전까지 다양한 문화예술적 상상력이 그 역사적 기초를 이룬 바 있다. 1980년대 초 반의 시와 노래, 그림들은 모두 5·18항쟁의 경험에 뿌리박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근식에 따르면, 이 장르는 1987년 6월 항쟁 이전까지 5·18기억의 재현의 주요 장르였으며, 6월 항쟁 이후 비로소 연극과 다큐멘터리를 거쳐 영화라는 재현의 방식이 채택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광주민주화운동과 문화적 실천의 궤적들은 각 시대마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그 영토를 넓히고 새로운 기억 담론을 형성해왔다. 마찬가지로, 역사와 기억 사이의 갈등을 기록하는 작업은 계속해서 새롭게 경계를 확장하고 그 방식을 실험해야 한다. 최근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다양한 접근들 중에서 눈의 띄는 작품은 강상우 감독의 <김군>(2018)과 김경자 감독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2017)이다.

<김군>은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시민군의 얼굴을 담은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해 그 인물, ‘김군’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한 기고문에서 사회운동 연구자 김정한은 다음과 같이 쓴다. “영화 <김군>의 반전은 아무도 ‘김군’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북한군 광수로 지목된 사진 속 인물은 무등갱생원 출신의 고아로 다리 밑에서 넝마주의를 하다가 시민군으로 활동했고 계엄군에 의해 사살됐다. 그는 당연히 북한군은 아니었지만, 소리없이 사라진 사람이었다. ... 한때 ‘구두닦이, 넝마주이, 술집 웨이터, 부랑아, 일용품팔이’는 민중론을 입증하는 항쟁의 주역이라고 여겨졌지만, 1980년대식 민중운동이 쇠퇴한 후에 밑바닥 하층민이이었던 그들은 복면을 쓰고 총을 든 ‘알 숭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3) <시네광주 1980>에서 상영된 <김군>의 프로그램 노트에 따르면, 강상우 감독은 “‘김군’을 찾는다는 것은 (동시에) 생존자들의 기억의 틈들을 수집해 하나의 거대한 모자이크를 구성하는 작업”이라고 밝힌다.

김경자 감독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2017)은 민주화 운동과 여성 노동의 교차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그간 광주 항쟁에 대한 여러 접근법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영화에 담긴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와 얼굴들은 80년대 노동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여성들, 당시 연극과 방송을 하던 문화예술인들, 시민군을 위해 시장과 집에서 도시락을 만들고 마스크를 지은 어머니들이 포함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광주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목소리들이면서도, 감독은 그 기억들을 그냥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현재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그 동안 전남대학교 전남도청, 상무대, 전일 빌딩 등 그 상징적인 공간을 통해서도 많이 이야기되어왔다. 그런데,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보여주는 민주화운동의 공간들은 다르게 느껴진다. 인터뷰하는 여성들의 집이기도 하고 일터이기도 하다. 역시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당시 활동가였던 여성이 당시 취조당했던 505 부대를 다시 방문하는 장면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 건물로 들어서서 머뭇거리시듯이 과거를 회상한다. 지하 취조실에서 자루가 쌓여 더 못 들어가자 그 앞에서 어두운 안쪽을 한참 들여다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여성들의 모습이 각각의 공간에 겹쳐졌다가 사라지는 디졸브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왜 사람들은 사라지고 공간이 남는 것인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중

이 텅빈 공간을 마주하면서, 공론장으로서의 5·18민주화운동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영역(The Civil Sphere)』이란 책에서 제프리 알렉산더(예일대)가 강조하듯이, 시민 영역은 ‘이상화된 유토피아 공동체’이며 우리는 사회갈등을 민주적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민족국가 내부에 시민 영역을 확립하기 위한 집요하고 완고한 요청을 멈춰서는 안된다. 폭력에 저항하고 사회적 연대라는 강한 비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광주’는 다시 한번 비워지고 새롭게 채워지기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매해 5월이 되면 기념행사로 자축되고 마는 역사가 아니라, 항상 새로운 장소의 기억과 연대하고 시민 영역의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문화적 기억의 실천으로서 광주민주화운동을 계속해서 상상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 <시네광주 1980>의 영화프로그램은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 상영되었다. 영화제 기간이 지나 초청작들은 내려졌지만 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서 영화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동영상 프로그램들 -- 예를 들어, 프로그램 노트, 감독과의 대화, 온라인 국제포럼 등 -- 을 살펴볼 수 있다. <시네광주 1980> 홈페이지의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cineg1980.kr/kor/default.asp.

2) Marianne Hirsh, Family Frames: Photography, Nationalism, and Postmemory, Cambridge: Harvard UP, 1997:22), p. 281

3)김정한, ‘이름’이 없어 ‘북한군 광수’로 몰린…풀뿌리 항쟁의 진짜 주역들, 경향신문, 2020년 4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