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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국제공조

현안과정책 309호

글/노주희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2019년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출현해 아직까지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는 우리가 이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사람의 국경 간 이동이 단절됨은 물론 각 국가 내 이동도 최소화되었고, 국제 분업체계와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에 균열이 나고 있으며, 그 당연한 결과로 글로벌 교역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20년 4월 8일(현지시간)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영향으로 2020년 세계 무역량이 최대 32%까지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뒤이어 폐업과 도산, 실업, 이에 대처하기 위한 각국의 파격적인 재정‧금융 정책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단일국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온 지구가 함께 해결해야 할 국제 문제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국제문제를 체계적‧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시스템이나 리더십은 부재하거나 또는 있더라도 미비하다. 즉,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하나의 통일된 리더십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다. 각국 정부의 판단에 따라 자국민‧외국인에 대한 입출국 제한, 방역물자 및 식량 등 필수물자의 수출입 제한 등에서 각각 다른 처방을 내놓고, 각기 다른 기준과 방식으로 감염 확진자를 진단‧격리하고 그 이동경로를 추적한다. 관련하여 대중과 의료계에 공유되는 정보의 내용과 수준도 제각각이다. 이 같은 ‘각국도생(各國圖生)’의 길을 필연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보호주의와 국수주의의 길로 세계를 이끈다.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신(新) 보호무역주의 시대가 코로나19를 만나 불붙고 있는 형국이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19 국제공조 체제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그 발전 방향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코로나19에 관한 국제공조의 현황

감염병에는 국적이 없고, 국경도 없다. 코로나19의 ‘출연지’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라는 점을 들어 코로나19를 ‘우한 폐렴’ 등으로 명명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코로나19의 ‘발원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복수의 국가들이 서로 동등한 지위에서 경합하는 근대의 베스트팔렌 체제(Westphalia System) 하에서 감염병에 대한 대응은 일차적으로는 단일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나, 각국 차원의 대응을 넘어 국제적 차원의 일사분란 한 대응이 감염병 확산을 최소화하는 데 필수적임은 물론이다. 신종 감염병 발발 시 그 확산을 국제적 차원에서 차단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국내적 대응조치와 관련한 각국의 주권(sovereignty) 제한, 입출국 제한 및 격리 조치 등과 관련한 각국 시민에 대한 자유의 제약과 인권 침해, 국제교역의 제한과 그로 인한 각국의 경제적 이익 감소 등과의 타협(compromise)을 요한다. 


감염병 발발 당시 이러한 타협을 이루어낼 시스템이 제대로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존재하더라도 미비하거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 그 필연적인 결과로 여행 및 입출국 제한 등에 관한 국가 간 외교적 갈등, 방역물자 및 필수물자 등 수출입 제한을 둘러싼 통상 마찰, 특정 국가 및 인종에 대한 혐오‧차별 등이 나타난다. 보호주의와 국수주의가 강화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 같은 시스템 부재 또는 미비의 가장 나쁜 결과는 신종 감염병의 신속한 종식과 감염병 확산으로 말미암은 경제적 타격으로부터의 회복이 더뎌진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지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맞닥뜨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구현 중인 미증유의 세계다.


현행 국제공조 체제

신종 감염병의 국제적인 확산 방지에 관한 국제기구는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이하 ‘WHO’)이다. WHO는 국제연합(UN)의 내부 기관은 아니지만, 「국제연합헌장」 제57조에 근거하여 각 전문분야별로 창설된 UN 전문기구로서 광의의 유엔 일원으로 취급되고 있다. 현재 회원국은 194개국이고, 우리나라는 1949년 가입하였다. 


관련된 현행 핵심 국제법은 「2005년 국제보건규칙」(International Health Regulation, 이하 ‘IHR 2005’)이다. IHR 2005는 WHO 총회에서 2005년 5월 채택되어 2007년 6월 15일부터 시행된 국제법 규범으로, 신종 감염병의 발생 시 WHO 회원국이 준수하여야 할 통고 의무와 정보 제공 의무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으며, 전 회원국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있다.


IHR 2005는 WHO 각 회원국에 대하여 강화된 의무를 부여함과 동시에 WHO에 대하여도 강화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IHR 2005는 각 회원국에 △감염병 발발에 대한 통보 의무 범위 확대(페스트, 콜레라, 황열 등 6개 전염병 → 질병(disease), 사태(event), 공중보건위험(public health risks), 국제적 관심의 공중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이하 ‘PHEIC’), △회원국 내에 IHR 2005의 핵심기준에 따른 감독체계의 수립 의무 부과, △회원국의 의무 이행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수립 등 강화된 의무를 부여하고, WHO에 △국제적 관심의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판별 권한 부여, △여행 규제 조치, 상품의 반출입 제한 등 PHEIC 판별 여부에 따른 회원국에 대한 대응방안 권고 자격 부여, △회원국의 공식 통보 외 비정부기구 등을 통한 감염병 발생정보의 수집 권한 부여 등 기존보다 대폭 확대된 권한을 제공하고 있다. 


IHR 2005는 2002~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 조류 독감(H5N1) 등 신종 감염병의 전 세계적 확산 이후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신 국제공조 체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존재하던 국제보건규칙(IHR)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마련되었다. IHR 2005는, 감염병 확산 방지를 우선 목표로 두고 이를 위하여 개별 국가의 주권, 특히 선진국의 경제적 이익을 제약하는 것을 상당 부분 용인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다는 점에서, IHR 2005 이전의 국제규범이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한 국제적 이동과 교류 저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우선적 가치로 하였던 것과 구별된다. IHR 2005는 이러한 점에서 감염병 확산의 방지에 관한 규범력 있는 국제공조의 새로운 기틀을 만든 것으로 일을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행 국제공조 체제의 문제점

그러나 감염병 발생 시 당사국인 회원국이 IHR 2005에 따라 WHO에 신속한 통고를 하지 않아도 이를 강제하거나 제재할 수단이 미비하고, WHO이 신종 감염병 발생 시 IHR 2005에 따라 회원국들에게 어떠한 권고를 하더라도 이를 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비판이 크다. 당장 코로나19 발발 당시 중국은 이를 신속하게 WHO에 통고하지 않고 은폐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IHR 2005가 감염병 발발 당사국에 바이러스 샘플이나 진단 백신 치료에 관한 기술을 다른 회원국들과 공유하도록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관련 바이러스샘플을 재생산하는 데 성공했지만, 바이러스 샘플은 다른 WHO 회원국들에 공유하지 않고 유전자 서열 정보만 공개하였다. 


설립 이래 현재까지 만성적인 예산 부족에 시달려온 WHO가 미국, 중국 등 WHO의 주요 예산 부담 국가들의 입김에 휘둘려 전염병 확산 방지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이들 국가의 경제적 타격 최소화에 복무한다는 비판도 크다. 1)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코로나19 분쟁으로 그 전선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4월 15일(현지시간) WHO가 중국을 감싸느라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WHO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WHO의 태생적인 한계를 드러내 보였다. 


더 나아가, 현행 국제공조 시스템 상으로는 감염병에 대처하는 국가 간 역량에 존재하는 불균형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해, 이는 결국 전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 방지에 저해가 되고, 감염병 대처 능력이 없는 국가들 사이에서 전면적 입출국 제한 등 과도한 보호주의 경쟁을 낳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위와 같은 비판은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확산 사태와 이에 대한 WHO 및 각국의 대응을 통해 유의미한 비판임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 대륙으로 확산되어 감염자와 사망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가운데 WHO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세계화(globalization) 이후 유례없는 수준으로 사람의 이동이 차단되고, 수출입이 제한되고, 교역이 위축되고 있으나, 이를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다른 국제공조 시스템도 제대로 발동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도 자국의 방역에 우왕좌왕하느라 아무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전 세계는 세계화 이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단절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비판 지점은 현재의 국제공조 시스템이 신종 감염병의 발생과 확산 방지에 관련한 기술적인(technical) 대응에만 관심을 둘뿐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전염병의 발발 원인과 이에 따른 대응책 모색에 근본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에이즈(AIDS), 구제역, 조류독감, 사스(SARS),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19 등은 모두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수공통전염병이 끊임없이 지구를 위협할 것임을 경고해 왔다. 이들이 지적하는 인수공통전염병의 창궐 원인은 생계계 파괴와 기후위기(climate crisis)로 생활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의 인간과의 잦은 접촉, 유례없는 인구수 증가와 밀집된 주거형태, 세계화로 인하여 증가된 교역‧교류 등 현대문명 그 자체이다. 때문에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은 끊임없이 지구촌과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것이고, 그 발발 빈도수와 파괴력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WHO와 IHR 2005은 이 같은 인수공통전염병 대응을 위한 국제공조의 시스템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신종 인수공통전염병에 관한 한, 국제공조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가혹한 평가마저 가능한 지점이다. 


국제공조 체제가 나아갈 길

현재의 자유무역 질서, 특히 인적·물적 자원의 자유로운 이동과 활발한 교역은 지난 20세기 초반 당시의 경쟁적인 보호무역과 대공황, 그 결과 중 하나인 제2차 세계대전의 고통을 겪으며 탄생하였다. ‘각국도생(各國圖生)’의 길은 지구촌 공동체 전체의 파멸로 이어진다는 당시의 교훈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유효하다. 역설적이게도, 이 같은 자유무역 질서는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인수공통전염병의 확산에 기여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국제공조 체제가 부재한 현 상황에서 각국은 자유무역 질서에서 부분적으로 이탈해 경쟁적으로 보호주의와 국수주의의 길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대응은 물론이고 그 사후 대응체계의 모색, 더 나아가 세계경제 회복을 위한 재정·금융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G2’ 미국과 중국은 서로 협력하기는커녕 코로나19 발발 원인과 확산의 책임 소재를 따지며 기존 무역전쟁의 전선을 ‘코로나19 전쟁’으로 확대하고 있다. 


신종 감염병 예방 및 확산 방지에 관한 국제공조의 틀을, 보다 규범력 있는 것으로, 단순한 기술적인 대응 체계의 마련을 넘어 인수공통전염병의 발생 및 확산 원인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의 측면에서 새롭게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국제사회가 기후변화(climate change) 또는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는 전 지구적 과제에 대응해 유엔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과 같은 다자간 체제를 만들어 냈듯,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대응해 WHO와 IHR 2005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다자간 체제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언제고 다시 찾아와 우리를 전 지구적 재앙으로 이끌 것이다. 


한국은 현재 국제사회와 해외언론으로부터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단일국가로서는 가장 큰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 이르다면 이른 평가이나, 국내외적 인적·물적 교류의 제한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호하면서 이와 동시에 감염병의 확산을 차단하고 감염자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것은 그 어떤 유수한 선진국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해외 언론은, 코로나19 방역에 있어서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보여준 방역 차원에서의 모범적인 대응을 넘어, 이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의 개방성, 투명성, 혁신성 등 가치지향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으로,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이 단순히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책임감 있는 중견국이라는 재평가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향후 국제공조와 관련한 한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는 적극적으로 국제적 아젠다를 제시하거나 실행하는 등 그 경제규모에 걸맞은 주요국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거나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한다는 대내외적 평가를 받아왔다. 코로나19 사태는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당면한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을 새로이 수립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주었다. 한국이 신종 감염병 예방 및 확산 방지에 대응하는 새로운 국제협력의 틀을 짜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 밖에서 먼저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러한 거대한 전환점 앞에서 국제사회에 어떻게 응답할 것이냐는 큰 질문이 남겨졌다. 2019~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서의 모범 대응 사례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포스트(post)-코로나 시대’의 국제공조 체제를 설계·집행하고 전 지구적 위기에 앞장서 대응하는 리더로 발돋음할 것인가?



  • 1)  미국과 중국 간 기존의 무역전쟁이 코로나19 분쟁으로 그 전선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4월 15일(현지시간) WHO가 중국의 입김에 휘둘려 중국을 감싸느라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면서 WHO 자금 지원 중단을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