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페이퍼

좋은나라에서는 매주 우리 사회의 중요 현안을 중심으로 정책 이슈 페이퍼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전문적 지식과 분석에 근거하되 좀 더 널리 읽혀 현실 정치와 정책의 개선에 기여하는 자료로 쓰이기를 바라는 지식공유 활동입니다.

금융실명제 이해와 이건희 차명계좌 처리

현안과정책 210호

글/김정섭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가 전격 도입된 지 벌써 25년이 가까워오는 지금 금융실명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차명계좌 인정 여부가 아직도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있다. 한편에서 금융위원회는 차명계좌가 비실명자산이 아니며 따라서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른 한편에서 민주당 TF, 시민단체 및 금융행정혁신위원회 등은 특히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의 경우 일관되게 실명전환 대상이고 따라서 차등과세 및 과징금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두 주장을 살펴보고, 조화로운 해결책 모색을 시도한다.

  금융회사 입장에서 어떤 개인 계좌의 차명여부를 확인할 객관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금융회사에게 차명 여부를 가릴 의무를 부여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명계좌를 실소유자 명의로 전환하도록 요구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 주장대로 객관적인 방법으로 확인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건희 차명계좌는 실명전환 대상이 되고 아울러 차등과세 및 과징금 대상이 되는 것이다. 2008년 삼성특검이라는 매우 객관적인 확인절차를 거쳤기 때문이다.


1. 서론

  2017년 가을 국회 국정감사 기간 중, 2008년4월 조준웅 삼성특검(이하 삼성특검)이 적발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차명계좌 문제에 대한 금융실명법 적용의 적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경찰이 이건희 회장 자택 인테리어 공사비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삼성 측이 수십억 원의 공사 대금을 이건희 차명계좌에서 지불했는데, 이것이 과거 삼성특검에서 밝혀지지 않았던 추가 차명계좌라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지난 10년 가까이 잊혔던 이건희 차명계좌 처리 문제가 다시 급부상하였다.

  이는 1993년 8월12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이하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가 전격 도입된 지 벌써 25년이 가까워오는 지금 금융실명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차명계좌 인정여부가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간 금융당국이 삼성특검이 밝혀낸 이건희 차명계좌가 실명전환 의무가 있는 ‘기존 비실명자산’이 아니라는 주장을 견지해온 것이 이건희 회장으로 하여금 차명계좌 자산을 찾아가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 되었다. 한편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된 TF, 참여연대 그리고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가 자체 행정혁신을 위해 작년 8월말 출범시킨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까지 공통되게 ‘기존 비실명자산’이고 따라서 실명전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실명전환 대상 여부에 따라 해당 자산금액의 50%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논란이 이어지자 금융위는 이 문제를 법제처로 넘겨 법령해석을 요청했다(금융위 보도참고자료, 2018.1.2.). 이건희 차명계좌 관련 의혹이 불거진 이후 현행법상 과징금 부과가 어렵다는 입장을 지속해온 금융위가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 글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두 주장에 대해 살펴보고, 조화로운 답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제2절에서는 그간의 경과를 간략히 살펴본다. 제3절에서는 간단한 모형을 제시하는데, 이를 통해 차명계좌의 문제를 적시하고 두 주장을 대비함으로써 해결책을 모색한다. 제4절에서 법리해석을 제시하고 제5절에서는 과징금과 차등소득세에 대해 살펴본다. 제6절은 이 글의 결론이다.


2. 삼성특검과 이건희 차명계좌

  2008년 4월 삼성특검이 밝혔던 1197개 이건희 관련 계좌(1199개 계좌 중 중복계좌 2개 제외) 중 금융실명법상   실명확인 절차가 제대로 준수되지 않아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던 1021개는 모두 차명계좌였다. 이들 중 금융실명제 시행일(1993.8.12.) 이후 개설된 1001개는 삼성 구조본부에서 편법적으로 임직원들의 실명 확인을 거쳐 만든 계좌들이었다. 이들의 실명 확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는 감독당국의 설명과 그 후 삼성 구조본부 측에서 이 계좌들 자산을 은밀히 (소득세 차등과세 등 없이) 모두 찾아갔다는 의혹 등은 국민들에게 과연 금융당국이 금융실명제 주무부처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차명계좌 1021개 중 나머지 20개는 금융실명제 시행일 이전에 개설되었는데, 이중 일부는 차명이었고 나머지는 가명이었으나 실명전환 의무기간(1993.8.12~1993.10.12) 내 실소유자(이건희)가 아닌 타인의 ‘실명’으로 전환된 것이다. 실명전환 의무기간 중 실명전환하면서 실소유자 명의가 아니라 타인의 실명을 빌어 (소위 합의차명으로) 실명전환한 것이다.

  한편 2008년 삼성특검 직후 삼성의 이학수 부회장이 ① 차명계좌 모두 실명전환 ② 모든 세금 납부 ③ 일부주식 등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사회 환원 등을 대국민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 후 차명계좌의 실명 전환은 없었고(다만 차명주식의 경우 이건희 본인의 명의로 명의개서를 했음), 금융실명제 위반에 대한 과징금 및 소득세 차액 납부도 없었으며, 재산의 사회 환원도 없었다. 이건희 회장과 삼성 구조본부 측의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이 줄지 않는 이유이며, 차명계좌가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라는 금융당국의 주장이 호응 받지 못하는 실질적 이유다.

  금융당국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차명계좌는 타인의 실지명의로 개설된 것이므로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명제 도입 취지가 실소유자 확인에 있지 않으며, 허명과 가명 등을 없애고 (누가 되었든) 거래자가 자신의 실명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판결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차명계좌 중에서 객관적인 증거로 확인된 경우는 실명전환 대상이고 따라서 차등과세 대상이라고 주장한다(금융위 보도참고자료, 2017.10.30.). 금융회사 입장에서 차명을 사전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러하니 이를 확인할 책무도 부여받지도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 보도참고자료는 ‘금융위가 사후에 객관적 증거에 의해 확인된 차명계좌는, 금융실명법 제5조와 관련해, 차등과세 대상이라는 원칙을 유지해 왔다‘고 밝혔다. 이는 이건희 차명계좌가 차등과세 대상이라는 지적과 다르지 않다. 삼성특검이야 말로 이건희 차명계좌에 대한 가장 확실한 객관적 증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나가 만약 동 계좌가 차등과세 대상이라면 어찌 과징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겠는가. 배당과 주식의 가치 증가를 동전의 양면으로 본다면,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차등과세로 중과세하면서 주식의 가치 증가에 대해서는 금전적 제재(과징금)를 생략하는 것은 입법적 미비이다.


3. 두 가지 개념

<그림1> 개념도

<!--[if !vml]--> <!--[endif]-->


  여기서는 일정한 거래자의 은행 거래를 둘러싸고 거래자(명의인) B와 실소유자 A 간의 관계를 살펴본다(<그림> 참조). 우선 거래자는 은행에 가서 예금을 하는 사람이다. 이 거래자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실지명의로 예금을 함으로써 명의자가 된다. 즉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확인받고 자신의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고 거래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 사람이 예금한 돈이 실제로 누구의 소유인가 라는 문제가 있다. 사실 은행 입장에서 이 돈이 누구 돈인지 신경 쓸 이유는 없으며 실제로 누구 돈인지 알 수도 없다. 그러니 법이나 은행이 간여할 바 없는 것이다. 혹시라도 후일 문제가 생기면 명의자를 주인으로 인정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즉 차명계좌를 인정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명의자를 실소유주로 보지 않도록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건희 차명계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처음부터 차명계좌를 인정하지 않고 명의인에게 법적 소유권을 확실히 부여했더라면 차명계좌 문제가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탈세, 증여, 상속 등에서) 이득을 취하고도 사회적, 경제적 신분의 우위를 이용하여 차명의 피해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가 결국 온갖 경제적 비리와 사회적 모순을 허용했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 두 가지 개념으로 구분하여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개념 1] 차명 불인정(단 예외 허용) + 이 경우 발생하는 문제는 현행법으로 해결

  차명을 불인정하는 경우, 일정한 거래자와 금융회사 간에 다음 두 가지 금융거래가 가능하다. ① 거래자가 자기소유 금융자산을 자신의 실지명의로 거래하는 방법과 ② 거래자가 타인 소유 금융자산을 타인의 실지명의로 그를 대리하여 거래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가족명의와 자녀명의 그리고 문중, 동창회 등을 위한 선의의 차명(실명)계좌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그 외 차명거래는 법으로 금지한다.

  만약 이러한 개념이 법으로 구현되었다면 이건희 차명계좌는 불법이 되고 은밀한 인출 등 위법 발생 시 과징금과 차등과세 등은 당연하다. 이는 금융실명제 도입의 근본 취지를 살리고 법정의 실현에도 기여할 것이다. 과거 긴급명령 도입 당시 이러한 방식이 지나치게 과격하여 시장에 단기적인 혼란과 비용발생을 초래한다는 의견이 있어 [개념 1]의 엄격한 구현이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 오랜 기간에 걸쳐 혼란과 비용을 초래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2014년 8월의 실명법 개정 취지도 실제로 이러한 이슈를 다루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념 2] 차명 인정 + 이 경우 발생하는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시 추가 법령 등 제정

  차명계좌 인정은 ‘거짓 거래를 인정하는 것’으로 금융실명제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차명을 인정하게 되면, 거래자와 금융회사 간 금융거래로 [개념 1]에서의 ①과 ② 외에 ③거래자가 타인 소유 금융자산을 자신의 실지명의로 거래하는 (합의차명) 방법이 가능해지는데, 이는 명백한 거짓 거래이고 수많은 복잡한 문제와 비용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전술한 바와 같이, 통상의 금융회사 직원은 현실적으로 거래자가 실소유자인지를 가릴 수 없고 따라서 그에게 차명여부 확인 의무를 부과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차명계좌는 부정한 거래의 은닉처가 되고 불법적 상속과 증여를 위해 오용될 수 있으며 제재나 중과세 대상이 불명확해지는 등 여러 문제들을 수반하게 된다.

  [개념 1]과 [개념 2]의 절충방안은 무엇일까? 실제로 금융위가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적시한 방법 즉 객관적 제시한 것처럼 객관적 증거에 의해 확인된 차명계좌는 차등과세는 물론이고 과징금 등을 부과하여 차명의 유인을 줄이고 아울러 차명 적발 가능성을 높이는 게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만약 적발 가능성이 100%, 적발 시 벌금이 100%라면 이는 [개념 1]로 돌아간다. 만약 적발 가능성이 0이거나 적발 시 벌금이 0이라면 [개념 2]로 남는다. 결국 절충방안은 적발가능성과 적발 시 벌금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


4. 법리 해석

  여기서는 차명계좌가 실명전환 대상인지 여부를 금융실명제 실시 전과 후로 구분하여 대법원 판결 중심으로 살펴본다. 우선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된 차명 계좌가 실소유주로의 실명전환 대상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일관되지 않은 모습이다.

  1998년 대법원 판결(대법원 1998.8.21.선고98다12027 판결)은 차명계좌가 실명전환 의무가 있다고 본 대표적 판결이다: “긴급명령 제3조 제1항에서 말하는 '거래자의 실명에 의한 금융거래'라 함은 금융거래계약에 따라 금융기관에 대하여 금융자산 환급청구권을 갖는 계약상의 채권자인 거래자 자신의 실명에 의한 거래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가명에 의한 거래는 물론 거래자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실명에 의한 거래는 '거래자의 실명에 의한 금융거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거래자에게 실명전환의무가 있는 기존 비실명자산에는 가명에 의한 기존자산과 함께 타인의 실명에 의한 기존 금융자산도 포함된다.”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거래자(명의자)에게 환급청구권을 부여하도록 함으로써 전술한 [개념 1]에 부합된다. 따라서 차명은 인정되지 않고 차명이 대변하는 (금융)관계 역시 인정되지 않으며 거래자=명의자=실소유자로 인정된다.

  이에 대한 금융위의 비판은 두 가지인데 각각 설득력이 높지 않다. 첫째, 금융위는 해당 판결의 대상자가 차명(즉 실명)이 아니라 가명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가명이 금융회사 직원의 인적사항 잘못 기재로 인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문제가 해소되었다(전성인, 2017.11.23). 둘째, 금융위는, 대법원이 금융실명법상 ‘거래자’를 ‘주민등록증을 통해 실명확인을 한 예금명의자’로 판단하는 상황에서, 명의인이 실명확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명의인이 아닌 실소유자’가 금융거래계약의 거래자로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실명전환이 적용된다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객관적 증거로 타인임을 확인한 경우만 실명전환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금융회사가 어떤 계좌가 차명인지를 확인할 객관적인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해석은 일반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게다가 금융위가 실명전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건희 차명계좌의 경우는 삼성특검이라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차명계좌임을 확인한 경우이기 때문에 실명전환 불가 주장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차명계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불인정한 예로는 전술한 1998년 대법원 판결 외에 1997년 대법원 판결의 반대의견이 있고 1999.12월 현행 금융실명제 해설, 2014년 금융실명법 개정 및 2016년 은행연합회 발간 금융실명제 업무해설 등에서도 최소한 부분적으로 차명계좌 불허를 찾아볼 수 있다. 전술한 금융위 보도참고자료(2017.10.30.) 는 객관적 증거로 확인된 경우 차명계좌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편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1997.4.17. 선고 96도3377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판결내용은 차명계좌라도 기존 비실명자산이 아니며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 ... 위 긴급명령의 취지는 ... 거래자가 차명관계에 있는지 여부나 차명관계에서 실권리자가 누구인지 여부 등 차명관계에 관하여는 어떠한 규율도 하고 있지 아니함이 분명하다. 따라서 위 긴급명령에서 말하는 거래자란 금융거래에 있어서 '자기의 명의로 금융기관의 상대방이 된 자 또는 되는 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반드시 자금의 실소유자 또는 금융자산의 사실상의 권리자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위 긴급명령 하에서는 그 제2조 제4호에서 정의한 실명이 아닌 명의 또는 무기명에 의한 기존 금융자산만이 기존 비실명자산으로서 위 긴급명령 제5조 제1항에 의하여 실명전환의 대상이 되고 차명거래에 의한 기존 금융자산이라도 그 명의가 위에서 말한 실명이라면 이는 기존 비실명자산에 속하지 아니하여 실명전환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아야 하므로, ....”

  그런데 이 판결은 보충의견에 불과하여 법적 효력이 없고, 다수의견은 이에 관한 명확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수의견은 “금융자산의 실질적인 권리자인지 여부를 조사·확인할 것까지 [금융기관의] 업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금융회사가 실제로 차명계좌를 확인하여 실소유자를 찾아낼 방법이 없음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차명계좌를 인정하는 판결로 2009년의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9.3.19. 선고 2008다45828 전원합의체 판결)이 인용되는데, 이 판결의 의미는 차명자산을 무차별적으로 허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명자산의 효력을 원칙적으로 불인정하고, 금융자산은 원칙적으로 그 계약상의 명의자를 거래의 당사자로 보되 다만 금융기관과 출연자 사이에 이런 계약을 명백하게 부인하는 객관적이고 확실한 의사표시가 있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출연자를 거래 상대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전성인, 2017.10.20.). 게다가 이 대법원 판례는 2008년에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아 2008년 삼성특검 관련 판단에는 영향을 줄 수 없었다.


5. 과징금과 차등과세

  금융기관은 긴급명령 시행 전에 금융거래계좌가 개설된 기존 금융자산 중 이 법 시행 전까지 실명확인 되지 아니한 금융자산의 명의인에 대하여 이 법 시행 후 최초의 금융거래가 있는 때에 그 명의가 실명인지의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리고 동 거래자가 이 법 시행 후 실명 전환하는 경우에는 긴급명령 시행일 현재의 금융자산 가액의 50% 해당 금액을 과징금으로 원천징수하여 그 징수일이 속하는 달의 다음 달 10일까지 정부에 납부하여야 한다.

  금융실명법은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개설된 계좌의 자산에 대해서는 실명전환 의무와 과징금 징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즉 실명전환 및 과징금 징수 대상은 금융실명제 시행 전 계좌가 개설된 금융자산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삼성특검으로 드러난,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만들어진 20개 이건희 차명계좌에 대해서 과징금을 부과해야 하는 가가 관심사인데,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논란의 핵심은 전술한 차명계좌의 기존 비실명자산 해당 여부인데, 논란이 지속되자 금융위는 결국 해당 내용에 대한 법령해석을 법제처에 의뢰했다(금융위, 보도참고자료, 2018.1.2.).


<표1> 과징금 및 차등과세


과징금

이자 및 배당 원천징수세율

긴급명령

7조

9조

금융실명법


5조

금융실명법 부칙

6조

7조


  한편 금융당국은 사후에 객관적 증거에 의해 확인된 차명계좌는 차등과세 대상이라는 원칙을 유지해 왔다(금융위, 보도참고자료, 2017.10.30.). 관련해서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서 계좌개설일부터 실명전환일까지 발생한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하여 소득세 원천징수세율을 90%로 계산한다. 단 종합소득과세표준의 계산에는 이를 합산하지 아니한다.

  여기서 잠시 과징금과 중과세 부과 목적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명제 도입 취지가 (실소유자와 무관하게) 일반 거래자의 실명으로 거래하라는 의도였다면 원천징수세율 90%와 과징금 50% 등은 지나치게 큰 벌금이다. 이 정도면 관련 자산으로부터 발생한 모든 소득을 과세한다는 뜻이며, 과징금 수준도 과중함이 못하지 않다. 이 때문에 차명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면서 단지 거래자의 주민등록표 상 실지명의로의 전환을 추진했다는 (금융위 측) 해석은 설득력이 높지 않다.


6. 결론

  2017.10.30. 보도자료에서 금융위는 차명계좌가 실명전환대상인가와 관련해서 사후 객관적인 증거(검찰수사, 국세청 조사 및 금감원 검사)에 의해 별도의 실제 소유자가 밝혀진 차명계좌에 대해서는 금융실명법 제5조의 차등과세를 적용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런데 특검의 조사 및 발표 보다 더 객관적인 증거가 또 있겠는가. 따라서 특검이 밝혀낸 이건희 차명계좌는 당연히 실명전환 대상이고 그중에서 특히 긴급명령 이전 개설된 20개 계좌는 소득세 중과세 대상으로 판단된다.

  한편 차명계좌에 대해 이자·배당소득 원천징수세율 적용시는 비실명자산으로 해석하고 과징금 징수시는 실명자산으로 해석하는 것은 동일자산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일관성에 문제가 생긴다. 실제로 어떤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와 배당 소득에 대해서는 고율의 차등과세를 하는 데 반해, 동일 자산의 가치증식에 대해서는 벌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도 일관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참고문헌>
금융위원회, “삼성 차명계좌 관련 과징금 및 차등과세 문제,” 보도참고자료, 2017.10.30.

금융위원회,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관련 법령해석의 요청,” 보도참고자료, 2018.1.2.

금융행정혁신위원회, 「금융행정혁신 보고서」, 2017.12.20.

박용진 의원실, “이건희 차명계좌,” 2017.10.18.

방효석, “차명재산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2017.11.1

전성인, “이건희의 차명주식 보유 진상규명과 과세 관련 정리,” 2017.10.20.

전성인, “박기혁 사건 고법판례,” 2017.11.23.

조선혜ㆍ고정미, “도마 위 오른 이건희 차명계좌, 알고 보니 비자금?” 오마이뉴스, 2018.1.14.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이건희 차명재산, 금융실명법상 90% 소득세 원천징수해야,” 논평, 2017.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