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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내(內) K팝 노하우의 전수와 정부의 역할

현안과정책 382호

글/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 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동아시아의 다양한 나라에서 K팝의 제작 방식과 세계 시장 성공 전략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정부 관계기관 및 K팝 업계에서도 이를 위해 해당 국가의 가수를 초청하여 일종의 ‘산업 연수’를 시키거나 업계의 노하우 및 기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기술적인 측면에서 K팝을 배우기 위한 접근은 전수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에게 불완전할 수 있는데, 그것은 똑같은 기술을 다른 나라에 그대로 적용한다고 해서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확인하고 따라할 수 있는 구체화된 기술과 노하우 뒤에는 그것을 가능케 한 다양한 정치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떻게 '자기화'하느냐의 숙제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양쪽 모두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와 같은 일은 기술 수출과 전수의 관점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교류로 가는 환경을 조성 및 촉진하는 보다 원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는 ‘교류의 판’을 깔아준다는, 사기업이 놓치기 쉬운 공익적인 차원을 꼭 고려하여 이러한 교류 활동을 장기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들어가며

최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이하 KOFICE)에서 베트남과의 대중음악 교류를 위한 사업을 시행했다. ‘2021 동반성장 디딤돌’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이 교류 행사는 베트남 가수들이 한국으로 직접 와서 약 석 달 동안 체류하며 K팝을 직접 체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K팝의 상징이자 주요 정체성인 ‘기획사-아이돌’ 시스템 하의 교육과 트레이닝을 받고, 한국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해 K팝의 스튜디오 음악 제작 방식에 따라 음원을 녹음하기도 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베트남 가수들과 녹음 작업을 진행한 작곡가 윤일상이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부분들을 베트남 현지 활동에 적용하여 더욱 더 멋진 아티스트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언급한 것처럼,1) 이는 국내 음악인과 해외 음악인 사이의 일반적인 협업이라기보다는 ‘배움의 장’의 성격이 더 강했다. 이 부분은 행사를 주관한 KOFICE 측에서도 언급한 것으로,2) 자국 베트남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K팝의 노하우를 배우고 그것을 자신들의 음악 산업에도 적용하기 위한 일종의 ‘산업 연수’의 성격을 띤 교류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K팝의 제작 방식을 수출하고 구체적인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의 교류는 관(官) 주도 하에서만이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인기 K팝 여성 그룹 ‘마마무’의 소속사인 RBW가 대표적인데, 이들은 해외 엔터테인먼트사의 의뢰를 받아 자신들의 노하우와 시스템으로 가수를 발굴·육성하고 그들의 데뷔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총 10개가 넘는 그룹을 데뷔시켰다. RBW는 이를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아티스트& 뮤직 프로덕션’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일종의 제작 대행 방식인 동시에 이를 통해 탄생한 가수들이 자국에서 활동하며 자신들이 배운 것들을 소속사 및 후배 가수들에게 전파해주는 일종의 ‘산업 연수생’ 역할을 하게 되는 시스템이다.3)

사실 2010년대 초반 한국의 한 대형 K팝 기획사에서 안무와 무대 퍼포먼스 등을 가르쳤던 안무가가 태국 기획사의 초빙을 받고 현지에 가서 ‘Candy Mafia(캔디 마피아)’, ‘Evo Nine(이보 나인)’ 등의 그룹을 제작하여 성공을 거두는 등 K팝의 전문 인력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외로 스카우트되어 현지에 기술을 전수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4) 그러나 정부 기관이나 민간 기획사가 직접 나서서 산업의 노하우를 알려주거나 K팝 방식의 트레이닝을 시키는 것과 같은 본격적인 형태의 ‘수출’은 비교적 최근의 경향이다. 이는 이제 K팝 시스템이 그만큼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다듬어졌다는 점, 그리고 해외 (특히 동아시아5) 지역)에서 K팝이 ‘배우고 싶은 선진적인 어떤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높은 위상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대중음악 전문가 황선업은 현재 K팝의 제작 방식, 특히 노래와 안무 등을 구성하고 가르치는 방식이 대부분 ‘매뉴얼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수요가 발생했다고 설명한다.6) 이는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고 따라할 수 있는 한국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도입하면 자신들도 비슷한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태도다.

선진 기술의 자기화: 과거 동북아시아 3국의 사례

실제로 K팝 시스템과 노하우가 그 정도로 선진적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K팝이 2010년대 초중반 이후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거두고 있는 눈부신 상업적·문화적 성과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으며, 이는 상대적으로 한국과 문화적으로 근접한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특히 K팝이 중국어권 국가(중국, 대만, 홍콩)를 중심으로 한류의 일부로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무렵부터 다른 동아시아 국가보다 일찍 한국 대중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그것을 폭넓게 수용해온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의 경우7) 꾸준히 K팝을 참조, 모방, 때로는 표절하면서 K팝을 선호하는 자국 수용자들에게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처럼 K팝을 적극적인 참고 대상(레퍼런스reference)으로 삼아 만들어낸 자국 음악을 베트남의 경우는 V팝, 태국은 T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명칭부터 음악적인 특징 및 외적인 이미지나 뮤직비디오 스타일까지 모두 케이팝과 매우 유사하다.8) 그러나 이들 음악은 국내외 K팝 팬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국 내에서도 꾸준히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즉 독창성의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그저 K팝 흉내내기에 불과할 뿐 ‘원조’ K팝의 질감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베트남이나 태국만의 독자적인 요소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이들 국가에서는 한국의 기술과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K팝에 필적할 수 있는 자국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하였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자세는 과거 19세기 후반 근대화 초기에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이 서양의 ‘선진적인’ 문화에 대해 취했던 태도와 유사점이 있다. ‘쇄국(鎖國)’이라고 하여 서양 제국주의 열강과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기조로 하던 동북아시아 3국은 1840년대 초반 중국(청나라)을 시작으로 1850년대 초반 일본, 1870년대에는 한국(조선)이 외부 세력에 의한 강요된 개항을 하게 되었다. 개항 시기와 구체적인 과정은 달랐지만, 세 나라 모두 이 과정에서 서양 열강의 압도적인 힘과 발달된 기술 문명을 알게 됨과 동시에 자신들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한중일 3국은 흥미롭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발전을 이루려고 했다. 3국의 근대화 과정 초기에 등장했던 중국(청나라)의 ‘중체서용(中體西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 한국(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가 바로 그것이다.

용어는 다르지만 이는 모두 자신들의 전통적인 정신을 유지하면서 그 위에 서양의 기술을 수용하고 배워서 근대화와 국가 발전을 이루겠다는 철학적·사상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서 이미 그 우수함이 증명된, 눈에 보이고 비교적 습득이 쉬운 외국의 뛰어난 기술을 받아들여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직 일본만이 화혼양재가 아닌 모든 시스템과 사상까지도 적극적으로 서양화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인 메이지 유신을 통해 빠른 근대화에 성공하여 세 나라 중 유일하게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화를 피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후 중국과 한국 모두 단지 기술을 배우는 것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개혁과 근대화를 추진하지만 (변법자강운동, 갑오개혁 등) 늦은 감이 있었고, 결국 국토의 일부 혹은 전부가 타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 실패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는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구체화된 기술 뒤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점을 들 수 있다. 서양의 기술이 태어나고 발전한 18-19세기의 환경과 동북아시아 3국이 근대화를 시도한 19세기 후반의 시대적·문화적·사회적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서양의 뛰어난 기술을 가능케 한 배경에 대한 이해 및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성찰이 결여된 채 기술과 제도 같은 겉모습만 배워서는 그것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가 만날 때 한쪽 또는 쌍방의 문화 형태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인류학에서는 문화변용(文化變容, acculturation)이라고 부른다.9) 특히 접촉하는 문화체계들 사이에 어느 정도 수준 차이가 있다면 한쪽 문화 전반에 걸쳐 때로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급격한 변화와 재조직화를 피할 수 없는데, 과거 한국이나 중국은 눈에 보이는 기술적인 측면에만 집중함으로써 결국 부분적인 요소 도입에 그쳤던 것이다.


K팝 시스템의 지역화

그렇다면 K팝 시스템은 어떠한가? K팝은 음악 형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까지도 철저하게 미국과 일본을 양대 참고 대상으로 삼은 후 그것을 한국적인 문화 요소와 성공적으로 혼종(混種, hybrid)한 결과물이다. 우선 음악적으로는 미국의 알앤비(R’n’B), 힙합(hip hop), 유럽의 전자댄스음악을 중심으로 하여 그 위에 일본 아이돌 댄스 음악의 멜로디 전개와 대중성을 아울러 결합하였다. 산업 시스템의 측면에서는 1920-40년대 미국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의 스타 이미지 메이킹과 전속 계약 방식부터 1960년대 미국 음반사 모타운(Motown)의 포드주의적인 공장형·분업형 음악 제작 시스템, 그리고 쟈니스 사무소로 대표되는 1980-90년대 일본 음악산업의 아이돌 제작과 관리 방식을 모두 적극적으로 참고했다.10) 여기까지가 그들의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었다면, 2000년대 중반의 ‘2세대’ 이후부터 K팝 산업은 외국인 작곡가와 가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소속 가수들의 창작 자율성을 점차 크게 보장하는가 하면,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 인터넷 라이브 방송 등 새로운 인터넷 미디어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독자적인 미학을 지닌 뮤직비디오를 더욱 심화된 형태로 만들어내는 등 기술뿐만 아니라 시스템 역시 적극적으로 바꾸고 국제화시켰다. 이를 통해 K팝은 기술적인 차원에서의 단순한 해외 음악 모방이 아닌 자기만의 시스템을 확립하는데 성공했으며,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국내외에서 모두 독자성과 개성을 인정받고 있다.

물론 현 K팝 시스템과 세계 시장 성공 전략 등이 그만큼 ‘선진적’이고 꼭 배워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다를 수 있으며, 더불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음악 산업 체계를 갖추고 있으므로 과거 ‘동도서기’류의 태도와 현재 이들의 사례를 1:1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베트남이나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음악 산업에서 자신들의 대중음악을 발전시키기 위해 K팝을 배워서 자기화(自己化)하려고 한다면, K팝이 미국과 일본의 음악 및 시스템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결국 그것을 어떻게 현지화·토착화하느냐의 숙제가 항상 존재한다. 간단히 말하면, 비교적 분명하고 모방하기 쉬운 특징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K팝이라고 할지라도 겉모습만 따라한 후 자신들의 산업에 그대로 이식(移植)한다고 해서 똑같은 결과물이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분명 어느 정도 시운(時運)도 따랐고 산업 내부에서 부침(浮沈)도 있었지만, K팝이 처음 수면 위에 등장한 199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 현재까지 사반세기 동안 꾸준히 발전·진화해오며 그 시장을 자국과 동아시아를 거쳐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K팝의 생산-유통-소비 환경을 뒷받침하는 정치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밑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통해 문화산업 내 자유로운 창작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 케이블TV의 대중화와 대기업의 문화산업 진출 및 초고속 인터넷망 확충 등으로 미디어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그것을 유통·소비할 수 있는 인프라가 빠르게 갖춰진 것, K팝 업계 내부적으로 새로운 글로벌 음악과 비즈니스 트렌드를 꾸준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적용하는 데 적극적이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즉 이제는 더 이상 ‘비법’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K팝 성공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기획사가 연습생을 트레이닝하는 방식이나 음악을 제작하는 방식 등의 구체적인 ‘기술’에 존재한다기보다는 다양한 산업 내외적 요소가 여러 가지 맥락 아래에서 총체적으로 결합되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일부에서 K팝은 이제 일종의 ‘기술적인 모듈(module)’, 즉 정형화된 생산 방식에 그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11), 그 모듈만 수입한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수하고자 하는 측이나 받고자 하는 측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결론: 정부의 역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 가수들의 산업 연수 스타일 K팝 체험이나 몇몇 K팝 기획사의 제작 대행 서비스를 이용한 자국 가수 육성 등이 과연 얼마만큼의 직접적인 효과가 있을지, 더불어 그것이 자국 음악산업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더불어 민간 기업에서 실시하는 노하우 전수 및 수출이 어느 정도 범위로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루어질지도 다소 의문인데,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이러한 활동들은 여전히 의미 있는 수익을 낸다고 보기 어렵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투자 대비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현실적으로 크지 않고, 차라리 현지의 재능있는 가수 혹은 지망생들을 케이팝의 자장(磁場)안으로 끌어들여 그들을 케이팝의 일부로 만드는 쪽이 훨씬 더 쉽고 유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들은 K팝 제작 방식이나 기술 및 노하우 전수의 관점, 즉 ‘수출’의 관점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교류로 가는 환경을 조성하고 촉진한다는 보다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베트남 가수의 K팝 체험’과 같은 행사를 KOFICE에서 주관했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일종의 공익적인 활동으로서 정부 산하 문화예술 관련 기관에서 담당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화교류’라는 것은 일방적인 것이 아닌 상호적인 것으로, 서로의 문화를 주고받을 때 비로소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고 넓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K팝 및 한류를 통한 문화교류는 대체로 한국 문화의 해외 ‘진출’의 관점에서 이해됐으며, 그 결과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고 그 기반을 확충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한류, 특히 동아시아에서의 한류 역사가 어느덧 사반세기에 이르렀고 K팝을 비롯한 다양한 한국의 미디어 문화상품이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랑받게 된 이제는, 한국 대중문화를 이토록 좋아하는 그들의 문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따라서 한국 문화가 바깥으로 어떻게 나가는지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한국 문화의 해외 시장 진출’의 시각이 아닌, 한국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그들 문화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인 ‘한국 문화의 해외 시장 진입’의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등 서양 문화권에 비해 정보가 많이 부족한, 그러나 오래전부터 꾸준히 한류의 기반이 되어 왔으며 문화적 근접성도 높고 앞으로의 잠재성도 풍부한, 무엇보다 한국과의 가까운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보다 활발하고 폭넓은 교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류의 판’을 깔아주는 일은 한류의 지속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분명 정부와 관계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1) http://kofice.or.kr/g200_online/g200_online_00D_view.asp?seq=20556

2)“한국에서 연수한 내용을 가지고 현지에 가서 활발하게 활동을 해서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는 강새롬 KOFICE 교류협력팀장의 언급 참조. https://news.ebs.co.kr/ebsnews/allView/60119723/N

3)RBW 홈페이지의 해당 전략 소개 페이지 참조 http://www.rbbridge.com/?page_id=15604

4)https://www.mk.co.kr/news/entertain/view/2015/01/77953/

5)본 글에서 ‘동아시아’라는 용어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모두 아우르는 광의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6)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8/12/781533/

7)해당 국가들의 한류 수용 양상에 관해서는 김수정(2012), ‘동남아에서 한류의 특성과 문화취향의 초국가적 흐름’, <방송과 커뮤니케이션>, 13권 1호, 5-54쪽 참조.

8)해당 국가에서 지역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은 케이팝 및 그들의 참고와 모방, 표절에 대한 논의는 KOCCA(2017). <K-Pop 글로벌 확산을 위한 음악시장 다변화 연구>, 77-82쪽 참조.

9)Berry, J. (1980). Acculturation as varieties of adaptation. In A. M. Padilla(Ed.), Acculturation: Theories, models and findings (pp. 9-25). Boulder: Westview Press.

10)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규탁(2014). ‘케이팝 브랜딩과 모타운 소울’. <대중음악>, 14권, 8-39; 이규탁(2016). <케이팝의 시대>. 파주: 한울엠플러스 참조.

11)가령 김영대 (2018). ‘하위문화로부터 탈한류 담론의 가능성까지: 케이콘과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한국방송학회 編, <문화연구의 렌즈로 대중문화를 읽다> (159-188쪽). 서울: 컬처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