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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한국 대학의 국제화, 무엇이 문제인가?

현안과정책 411호

글/서의호 (아주대 경영대교수, 포항공대 명예교수)



시급한 한국 대학의 국제화, 무엇이 문제인가?


몇 년 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여름에 영국 런던을 찾았던 적이 있다. 대학 평가기관인 타임즈(Times Higher Education)의 세계 총장회의 및 세계 대학 랭킹 발표에 참가하기 위한 것이 일차적 목적이었지만, 영국에 있는 세계적 권위의 옥스퍼드, 캠브리지, 임페리얼 대학 등을 방문해 대학 간 국제협력을 모색하려는 바램도 있었다.

 

우연히도 이날 발표된 타임즈 세계 랭킹에서 옥스포드가 1위, 캠브리지가 2위, 그리고 임페리얼이 8위를 차지해 이 세 곳의 영국 대학들이 위세를 떨쳤던 날이었다. 그런데 이 대학들의 국제처장들과 만나면서 한가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제협력에 있어서 대학 간 양해각서(MOU)에 서명부터 하고 그 다음에 협력할 거리를 찾는 방식인 하향식(Top-down) 접근을 지양하고, 개별 학과나 연구그룹에서 먼저 연구협력이나 교류협력이 이뤄져 활성화된 후 대학 수준의 협력으로 발전시키는 상향식(Bottom-up)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형식적 수준에 그치는 대학 간의 협력에 대한 그들의 저항은 완강해 보였다. 그들의 불만은 한국 일부 대학들이 대학 간 교류협정을 맺은 후 이를 외부에 과시할 뿐 실제로는 아무런 협력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물론 한국 대학들과 심도 있는 연구와 협력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대학 과시용·대학 랭킹용 교류협정은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학평가 또는 대학 랭킹을 위해 평판도를 높이고자 노력하는 것은 꼭 한국 대학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국제협력과 양해각서를 평판도 상승 방법으로 활용하고, 그러기 위해 자매대학을 늘리고 그들의 인지도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전략에 기초한 대학의 국제화 작업은 그동안 비판의 대상이었다.

 

대학의 `국제화`를 장려하고자 한때 대학 국제화 수준을 대학평가에 반영한 적이 있다. 국제화 평가에는 외국인 교수 수와, 영어강의 개설 수 등을 지표로 삼았다. 그러자 국제화 지표를 높이려고 편법으로 외국인 교수를 늘리거나 엉터리 영어강의를 마구 개설하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런 문제가 빈발하자 결국 교육부는 대학 평가에서 국제화를 제외하게 되고 각 대학들의 국제화 열기도 사그러지고 말았다. 이제 국제화는 거의 모든 대학들이 돈벌이를 위해 외국인 학생들 모집만 늘려대는 것으로 왜곡되고 말았다. 외국인 교수 확대와 영어강의는 대학평가를 떠나 한국의 대학들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나아가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국인 교수확대와 영어강의 증가는 반드시 국제 교류와 협력을 실제 활용하는데 사용돼야 하며 형식적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한국 대학의 국제협력 그늘은 여기에 있다. 국제협력은 실제적 한국대학의 국제화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류확대가 상향식으로 일어나야 한다.

 

상향식 교류확대를 위해 절대 필요한 기본 조건들이 점검돼야 한다. 아마도 위에 언급한 외국인 교수, 학생 확대와 영어강의, 영어환경 등도 그 조건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평가나 랭킹이 목적이 아니라 실제적 국제협력을 통한 대학평가 상승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평가마다 지표도 다르고 비중도 다르지만 세계적 대학들은 어느 지표 어떤 비중의 잣대에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실제적인 수준에서 국제화된 대학 운영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세계대학평가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는 싱가포르나 홍콩의 대학들이 그 좋은 예이다. 이들의 국제협력이나 국제화는 형식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탄탄한 기반 위에 발전되어 왔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대학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QS, THE 등 국제평가기관의 대학평가에서 한국의 대학들은 대체로 국제화 부문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20년간 국내 대학의 외국인 학생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표 1] 외국인 유학생 현황, 2020

 

문제는 이러한 외국인 학생들 증가에 걸맞는 국제화 인프라가 제대로 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단순한 외국인 학생의 증가는 대학들의 등록금 수입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진정한 대학의 국제화와는 거리가 있다.

 

한국 대학이 한 단계 더 점프하기 위해선 낮은 수준의 국제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평가기관들은 충고 한다. 국제화 지표 성적에서 상위 50위 안에 든 한국 대학이 단 한 곳도 없다. 한국 대학 시스템은 서구 대학 시스템과 경쟁하기 위해 심각한 도전에 직면에 있다. 국제화 문제는 모든 한국 대학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이며 홍콩과기대나 싱가포르 난양공대 사례처럼 외국인 교수에 대한 문호를 대폭 개방하면 외국인 학생도 늘어나야 한다. 영어 진행 강의를 늘리고 국제적으로 개방된 학술 컨퍼런스도 자주 개최하는 것이 옳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 지금보다 영어 사용을 늘려야 한다 국내 대학이 발전하려면 세계화·국제교류가 필수고, 세계화를 위해선 영어로 진행되는 과정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국인 교수들에게 배타적인 문화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 외국인 교수들이 우리나라에서 안식년을 보내거나 연구하러 오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학생들도 졸업 뒤 한국에 남아 있을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 대하여 최근 대교협 총장들이 지적한 희망사항을 보면 대학의 국제화가 8위에 있다. 교육재정, 등록금등 고질적인 재정문제를 제외하면 상당히 상위권에 올라와 있다(표 2). 정부는 대학들에 대한 국제화지수를 평가하고 이를 위한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표 2] 대교협이 원하는 대학의 현안

 

현재 외국인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인증제는 있지만, 각 대학이 학과나 연구소 등의 레벨에서 상향식 협력을 외국의 대학들과 진행하고 있는지 또 그 수준이 어떠한 지 등을 측정하는 평가 시스템이 없다. 대학이 적극적으로 외국인 교수, 학생을 유치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지원하고 이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모바일 인터내셔널 스튜던츠(mobile international students 글로벌 학생들이 실제 캠퍼스에 있지 않고 여러 나라의 대학에서 공부하며 학점을 따는 형태)'들을 유치해 국제 학생 수를 늘리는 방안도 대학별로 장려하고 이를 인정해 주는 제도를 정부가 주도할 수 있다. 즉, 비거주 국제 학생 유치를 위한 법·제도적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정부가 대학을 평가할때도 국제화 지수에 최우선 중점을 두고 평가할 필요도 있다. 인구절벽 시대에 한국 대학의 살 길은 절대적으로 국제화에 있다.

 

대학의 국제화가 가져올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장점은 지역의 국제화 및 활성화에 대학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지역의 전국화와 관련된 두 개의 행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한 행사들은 궁극적으로 지역의 세계화와 연결될 수 있다. 우선 서울 집중을 막기 위한 각종 정책이 발표되지만 뚜렷이 성공한 정책이 없는 상태에서 지역의 전국화, 세계화에 지역 대학의 국제화가 핵심적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지역은 그 자체로 전국화, 세계화가 될 수 있다. 아주 좋은 예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시간쯤 남쪽에 있는 실리콘 밸리이다. 실리콘 밸리는 산호세 등 캘리포니아 베이 남쪽 지역에 산재한 도시들에 분포하고 있다. 산호세만 해도 70년대까지 크게 알려져 있던 도시는 아니었다. 그리고 큰 도시도 아니었다. 그러나 휴렛패커드를 기점으로 지금의 구글까지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 지역에 들어서면서 미국 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알려진 지역이 됐다.

 

이러한 발전에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스탠포드와 버클리 같은 대학의 역할이다. 80년대 스탠포드 대학을 다닌 필자는 대학과 지역의 협력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낳고 결국 지역이 전국화, 국제화가 되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한국의 경우 포항의 경우를 보면 실리콘밸리와 유사한 모습이 엇지 않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포스코와 포스텍이 있고, 포스텍을 중심으로 한 각종 연구소 및 포스코 관련 회사 등이 들어서 있다. 아마도 이제 필요한 것은 실리콘밸리와 같이 창의적인 해외 기업들이 더 많이 들어서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이 전세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외국인 학자와 교수가 붐비는 캠퍼스를 만들어 나간다면 지역의 세계화를 실현하는 발판을 구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을 생각하면 바로 그런 아이디어의 현실성을 느낄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실리콘밸리처럼 포항은 전국화되고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각 지역 대학들의 국제화가 그 지역을 국제화 시키는데 앞장설 수 있고, 서울 중심의 고질적 중앙집중 현상을 완화하며 지역 균형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이러한 목표를 향하여 각 지역의 대학, 연구소, 기업, 지역신문, 지자체, 의회 모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대학의 국제화는 그 시작이자 중심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