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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중국영화의 이데올로기 정치

현안과정책 371호

글/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최근 중국영화는 대체로 사회 통합을 중심 주제로 다루는 경향을 보인다. 중국의 사회 통합은 애국주의, 민족주의, 중화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로 수렴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은 시장과 관객의 수용 경향에서도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 글은 이런 배경에 따라 동시대 중국영화의 수용이 이데올로기의 작동과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려고 한다. 그 관련성을 밝히기 위해 (1) 동시대 중국영화의 생산과 유통의 경향을 분석하고 (2) 동시대 중국영화의 수용을 분석하며 (3) 생산과 수용 사이에 긴밀히 연결된 이데올로기 지향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한다.


동시대 중국영화의 생산과 수용

2020년, 중국영화 산업 매출액은 세계 1위를 달성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연간 박스오피스가 204억 1700만 위안에 그쳤지만, 상대적인 비교 우위를 점한 결과, 미국을 물리치고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이로써 중국영화는 오랜 숙원을 이룩했다.

21세기 이후 중국영화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중국 국가영화국(國家電影局)의 발표에 따르면, 2010년 101억 7200만 위안으로 사상 최초 100억 위안을 돌파한 박스오피스는 2019년 642억 위안으로 늘어났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창궐로 1월 23일부터 7월 20일까지 180일간 전국 영화관이 휴업에 들어가면서 영업일수가 반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출액 지표는 2019년 대비 1/3정도로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0년 중국의 자국영화 매출액은 170억 9300만 위안으로 83.72%의 점유율을 나타냈다. 흥행 10위권 안에 든 영화도 모두 자국영화로 채워졌다.

이 영화들은 대체로 재난과 빈곤을 벗어나려는 중국 사회(<나와 나의 고향>(我和我的家鄕) 등) 또는 이전과 달리 발전한 중국 사회(<우승>(奪冠), <쇼크웨이브2>(拆彈專家2), <반드시 잡힌다>(除暴) 등)의 모습을 전시하거나, 중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이라고 부르는 한국전쟁 70주년을 회고하고 ‘기념’하는 소재와 주제(<금강천>(金剛川) 등)를 다룬다. 이런 소재와 주제는 중국 사회를 통합하려는 이데올로기적 필요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수부대 전랑2>(戰狼2, 2017; 이하 ‘전랑2’)는 중국영화 박스오피스의 역사적인 변곡점을 기록했다. 이 영화는 2017년 개봉 이후 중국 내수 시장에서 56억 8781만 위안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사상 최초로 50억 위안을 돌파했고, 지금까지도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화는 중국 특수부대에서 잘못을 저질러 쫓겨난 렁펑(冷鋒)이라는 인물이 아프리카로 건너가 장사를 하며 살아가던 중 뜻하지 않은 군사 쿠데타 상황에 빠지면서 ‘강인한’ 무력을 동원하여 현지에 거주하는 중국인과 아프리카인을 구출해낸다는 스토리텔링을 담고 있다. 영화는 “우리 중화를 침범하는 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반드시 응징한다”(犯我中華者,雖遠必誅)는 주제를 전시한다. 이런 주제는 주인공 렁펑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는 마지막 길에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를 팔에 끼운 채 휘날리는 장면을 통해 상징적으로 재현되었다.

중국 관객은 이 영화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온라인 상영 플랫폼의 평점은 단적인 증빙이다. 2021년 4월말을 기준으로 아이치이(愛奇藝) 관객 6,132,000명의 평균 평점은 9.1점, 유쿠(優酷)의 평균 평점은 8.9점, 텐센트(騰訊視頻)의 평균 평점은 8.5점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댓글은 애국주의와 중화주의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바이두 댓글’(百度貼吧)에는 단순히 재미있다거나 잘 만들었다는 등 영화에 대한 호감을 나타내는 내용을 넘어서서 ‘애국주의적 감동’을 호소하는 댓글이 넘쳐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전랑은 중국인의 뜨거운 피와 굳셈을 상징한다. (123456就能 / 2017.7.27.)

- 인민의 이름으로 선언한다. 우리 중화를 침범하는 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반드시 응징한다.(niecetoyouqou / 2017.7.29.)

- 쓸데없는 소리 그만 두고, 전랑2를 보고 나서 애국심이 폭발했다.(I资源欧尼 / 2017.8.5.)

 

이뿐만 아니라 아이치이 송출 화면의 상하 여백에는 시청자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기능이 있는데, 여기에도 역시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눈물이 계속 흘러서 영화를 볼 수가 없다”는 등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전랑2>은 유사한 장르 영화의 잇단 등장을 촉발했다. 2018년 <홍해행동>(紅海行動)은 36억 5121만 위안, 2019년 <유랑지구>(流浪地球)는 46억 8680만 위안의 매출을 각각 기록하면서 그해 최고 흥행영화의 자리에 올랐다. 두 영화는 모두 <전랑2>와 유사한 스토리텔링으로 중국이 지역과 세계, 나아가 우주를 구원한다는 설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들 역시 자국의 관객을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중화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장(filed)으로 통합해내고 있음은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이데올로기적 지향은 동시대 중국영화 수용에 있어 두드러진 경향을 형성하고 있다.


동시대 중국영화의 이데올로기 지향

중국 관객의 자국영화에 대한 수용 경향은 중국공산당의 선전 목표와도 부합한다. 중국공산당은 최근 영화를 통해 애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일련의 활동을 전개해 왔다. 우선 정책적인 측면에서 2018년 국무원 산하 집행 부서였던 ‘국가라디오영화TV총국’(國家廣播電影電視總局)을 분할하여 이 가운데 영화 부문을 공산당 중앙선전부 산하 기구로 옮겨 ‘국가영화국’으로 재편했다. 이런 조치는 영화의 이데올로기 선전 기능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중국공산당이 자국 내 영화 수용의 ‘정치적’ 방향을 더욱 확실하게 주도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실제로 중국영화의 시장 또한 공산당 선전 당국의 ‘지도’에 따라서 좌우되는 경향을 보였다. 비근한 사례로 중국 국가영화국은 중국공산당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영화가 특수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 우수영화 상영 활동에 관한 통지」(關於開展慶祝中國共産黨成立100周年優秀影片展映展播活動的通知)를 발표하고 2021년 4월부터 12월까지 관련 행사를 전개하고 있다. 4월부터 매달 선정되는 영화는 1950년대 이후 제작된 경우가 많은데, 6월 선정 목록에는 동시대 영화인 <전랑2>와 <홍해행동>이 ‘정전영화’(經典影片)라는 이름으로 포함되었다.

또 다른 사례로 <팔백>(八佰)을 들 수 있다. 2019년의 기대작 <팔백>은 그해 상하이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상영을 앞두고 있었지만, 영화제 개막 2일 전 갑자기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상영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공지했다. 중국영화에서 “기술적인 문제”란 공공연히 “이데올로기 문제”로 해석되어 왔다. 공산당 당국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일을 검토하고 있던 시점에 일본에 대항하는 ‘항일전쟁’의 전투를 그린 영화 상영에 부담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 같았던 영화 <팔백>은 이듬해에 다시 소환되었다. 코로나19 상황과 미-중 무역갈등이라는 내우외환에 직면한 중국 당국에게 국민 통합을 위한 강력한 이데올로기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팔백>은 2020년 8월 말 개봉, 국가수립기념일(國慶節) 기간까지 상영된 31억 231만 위안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중국영화 박스오피스가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이런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공산당의 이데올로기 선전이라는 핵심적인 요인이 중국영화 시장에 미치는 역할은 막중하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영화 시장은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으나, 영화에 대한 정책 규제는 여전히 시장을 통제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공산당 선전부와 국가영화국은 영화 제작에 관한 규제(시나리오 심사, 내용 심사, 기술 심사를 통한 공영증 발급을 포함하는 심사 제도), 수입 및 상영에 관한 규제(수입 영화 심사 및 편수 제한, 스크린쿼터 제도, 상영 취소 제도) 등의 대표적 규제를 통해 시장을 조절해 왔다.

이는 시장의 선택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전통적인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중국영화 시장에서 소비자로서의 수용자는 자유롭게 상품을 선택하는 주도권을 갖지 못하며, 동시에 국가와 공산당이 요구하는 상품만이 소비자와 만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중국공산당은 지난 100년 동안 여론 통합과 대외 선전을 위해 영화를 활용해 왔다. 애국주의, 민족주의, 중화주의는 공산당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면서 중국영화라는 상품에 깊이 삼투되어 있으며, 오늘날 중국영화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소비의 전제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다.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기호화와 기호해독」(Encoding/Decoding)에서 “텔레비전의 담론을 해독하는 세 가지 가상적 위치”를 제시한 바 있다. 첫 번째는 “지배적-헤게모니적”(dominant-hegemonic) 위치로서 미디어가 발산하는 “내포적 의미를 완전히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호화의 준거틀이 된 의미 규칙에 따라 메시지를 해독하는” 경우로서 이때 “시청자는 지배적인 기호 내부에서 작동된다”. 두 번째는 “타협적(negotiated) 기호 또는 위치”로서 “순응적 요소와 저항적 요소가 혼재”한다. “이러한 기호 해독은 헤게모니적 정의가 (추상적 차원에서) 높은 차원의 의미작용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하지만, 반면 좀 더 한정된 상황의 수준에서는 그 나름의 기본 원칙을 정한다.” 세 번째는 “대항적(oppositional)” 위치로서 “대안적인 준거틀 안에서 메시지를 재구성하기 위해, 선호되는 의미 규칙에 따라 메시지를 해체한다.”

중국영화 수용자의 의미 해독 과정은 다분히 “지배적-헤게모니적 위치”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튜어트 홀에 따르면 “지배적 정의는 개별 사건을, 은밀히 혹은 노골적으로, 총체적인 해석(거대한 총체화)에, 또 거대한 통합체적인 세계관에 연결시”키며, “개개 사건을 ‘국익’이나 지정학 수준에 연결시킨다.” 지배적-헤게모니적 시각은 “정당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으며, 사회 질서에 관해 ‘자연적이고’, ‘불가피하며’, ‘당연시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중국영화 관객은 자국영화를 수용하면서 타협적 의미 해독 또는 대항적 의미 해독을 선택하지 못한 채 지배적 의미 해독의 과정을 실천한다. 이로써 중국영화 관객은 공산당 선전부의 선전 사업을 통해 구성되는 지배적 의미를 선호하는 수용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자국의 영화를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으로 구성하지 못한 채, ‘능동적 수용자’로서의 위치를 포기하고 만다.

동시대 중국영화의 시뮬라시옹과 이데올로기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시뮬라시옹을 설명하면서 세 가지 층위를 제시한다. “첫 번째 층위는 현실의 복제라는 사실이 확연한 경우이며, 두 번째 층위는 현실과 재현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복제가 잘 이루어진 경우이다. 세 번째 층위는 조금도 현실 세계에 기초하지 않은 채 스스로 현실을 생산하는 경우이다.” 그에 따르면 세 번째 층위의 가장 비근한 사례는 ‘가상 세계’(virtual reality)로서 이 층위에서 ‘하이퍼리얼’ 모델이 “세계에 앞서 존재하게” 된다.

<전랑2>는 현실에서는 전혀 가능할 수 없는 스토리텔링이다. 중국 군대가 아프리카 대륙으로 진출하여 쿠데타를 진압하고 자국인과 아프리카인을 구조한다는 설정은 현실의 복제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현실과 재현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복제도 아니다. 뒤이어 나온 <홍해행동>이나 <유랑지구> 등의 텍스트가 전시하는 스토리텔링도 대동소이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들은 보드리야르가 말한 대로 “현실 세계에 기초하지 않은 채 스스로 현실을 생산하는 경우”, 즉 시뮬라시옹의 세 번째 층위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전랑2>, <홍해행동>, <유랑지구> 등과 같은 영화를 수용하는 중국 관객은 현실에서 성취할 수 없는 욕망, 즉 ‘대국의 욕망’을 스크린에서 대리 성취한다. 따라서 이들의 영화 관람은 판타지로 점철된 스크린을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착시화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스크린과 현실, 시뮬라시옹과 현실, 하이퍼리얼과 ‘리얼’이 하나로 합일되는 꿈을 꾸고 있는 셈이다.

이런 과정은 마치 디즈니랜드가 현실 세계가 디즈니랜드임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시뮬라시옹이라는 보드리야르의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세 번째 층위의 시뮬라시옹의 대표적인 사례로 디즈니랜드가 제시된다. 그는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디즈니랜드는 다른 세상을 사실이라고 믿게 하기 위하여 상상적 세계로 제시된다. 그를 감싸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전체와 미국도 더이상 실재가 아니고 파생실재(하이퍼리얼: 인용자)와 시뮬라시옹 질서에 속한다”고 말한다.

중국영화 관객은 국가권력이 준비한 상품을 소비하는 ‘수동적 수용자’이다. 이들은 준비된 상품을 소비하면서도 이를 마치 자의에 의한 선택이라고 착각하는 착시 효과 속에 놓여 있다. 이런 착시는 중국의 영화 관객이 지배적-헤게모니적 독해의 위치에 머물면서 하이퍼리얼과 시뮬라시옹의 세계를 성취함으로써 현실과 스크린을 구분하지 못하는 수용의 경향을 만들어낸다. 중국의 극장과 스크린은 현실이 강력한 힘을 가진 감독에 의한 거대한 스크린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동원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다.

알튀세르는 국가장치(State Apparatus)를 억압적인 경우와 이데올로기적인 경우로 구분한다. 억압적 국가장치는 정부, 행정, 군대, 경찰, 법원, 감옥 등을 포함하며,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SAs)는 종교, 교육, 가족, 사법, 정책, 직능조합, 언론매체, 문화 영역을 포함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논리적으로 그 장치의 개별 구성원에 선행한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신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데올로기가 실제를 암시하기지만 동시에 현실에 대한 환영을 남길 뿐이며, 재인과 오인의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암시와 환영, 재인과 오인의 개념쌍은 중국영화 관객이 자국영화를 수용하는 과정을 좀더 정교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들은 자국영화를 통해서 일정한 방식으로 현실에 대한 암시와 재인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예컨대 <전랑2>의 표상을 통해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국가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암시와 재인의 과정은 결국 자국민 뿐 아니라 중국 바깥의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설정에 이르게 되면 환영과 오인의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지점에서 중국 관객은 ‘지배적-헤게모니적 해독’의 층위에서 벗어나 ‘타협적 해독’의 층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표상으로 점철된 스크린 위에서 그들은 ‘세계의 강대국’이라는 국가 역량을 확인하는 더 강력한 스펙터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이런 기회의 줄을 놓치게 된다. 그 줄과의 단절, 곧 스펙터클 속으로의 투신은 시뮬라시옹 세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중국영화의 스크린은 사실 자국의 관객에게 현실이 스크린임을 자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장치로서의 하이퍼리얼이자 시뮬라시옹에 불과하다. 오히려 중국 관객은 스크린 바깥에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이데올로기적 규제와 통제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극장 안의 스크린이 시뮬라시옹이라는 ‘디즈니랜드’임을 표방하고 있을 때, ‘현실’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감독(국가권력)에 의한 또 다른 영화가 연출되고 있다. 그 영화 속에서 관객은 감독의 지시를 받는 ‘배우’로 분장하여 마치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스크린을 독해하고 있다는 착시 속에서 이데올로기 연출의 구조 안에 위치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은 일종의 ‘스크린 국가’라고 명명될 수 있을 것이다.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19세기의 발리를 조사한 뒤 이를 ‘극장국가’(theater state)로 명명한 바 있다. 그는 문화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상징적 형태들”을 기술하고, 나아가 이를 “의미구조 전체 안에서 맥락화”하는 두 가지 접근이 상호 수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는 ‘스크린국가’로서 중국의 ‘특정한 상징적 형태’라고 명명할 수 있다. 또한 국가가 지배 이데올로기를 영화라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투사함으로써, 영화 관객은 이를 비타협적, 지배적-헤게모니적 해독의 과정을 통해 수용함으로써 ‘이데올로기 사슬’을 완성하는 데 수용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점은 동시대 중국영화의 이데올로기가 관통하는 전체 맥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클리포드 기어츠는 ‘문화체계로서의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한 다른 글에서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관해 서술하면서 “두 가지 접근법”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이익이론(interest theory)이고 다른 하나는 긴장이론(strain theory)이다. 그러나 양자는 “모두 상징의 상호작용의 체계(systems of interacting symbols)로서, 또는 의미의 상호교환의 양식(patterns of interworking meanings)으로서 이데올로기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못한 채 원인 분석에서 곧바로 결과분석으로 나아가고 말았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상징의 상호작용의 체계, 의미의 상호교환의 양식으로서 존재한다고 간주할 수 있을 텐데, 중국영화라는 상징은 국가와 관객이 상호작용함으로써, 또는 국가와 관객이 그 의미를 상호교환하는 양식으로 설정함으로써 이데올로기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영화가 자국의 내부에서는 대규모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자국의 경계를 벗어난 외부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상황 또한 이와 같은 영화 수용의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