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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와 방위비: 외교 문제 프레이밍의 실패

현안과정책 298호

글/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정치는 국경에서 멈춘다 (Politics stops at the water’s edge.)”라고 하여 외교 안보 문제는 국내정치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영역으로 간주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외교안보에 관한 최고 의사 결정자가 곧 국가 정치 체제의 최고 의사 결정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외교안보에 관한 의사 결정이 국내 정치와 유리될 수가 없다. 최근 두 가지 중대한 외교 안보 사안이 그 논의의 출발점을 잘못 잡음으로써 의사 결정 과정의 어려움을 초래한 바가 있다. 우리 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와 한미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관한 것이 그것이다. 이 두 문제는 논의의 출발을 잘못하여, 국내정치적으로 지지를 받기 어려운 프레임에 갇히게 되었고 결국 최종 의사 결정을 매우 어렵게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파병 문제의 경우, 미국과 이란의 갈등 사이에서 우리의 이해에 무관한 문제에 대해 미국의 요구로 파병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프레임에 갇혀 의사 결정이 어렵게 된 경우이다. 또한 방위비 협상에서는 우리보다는 미국 쪽,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에 기인한 측면이 큰데, 왜 한국의 방위비 부담이 증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못된 프레임으로 접근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타결은 고사하고 그로 인해 한미 동맹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다음에서 이 두 가지 사안을 살펴보도록 한다.



2020년 1월 21일, 한국 정부는 미국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참여하는 대신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을 확대하는 형태로 독자 파병을 결정하였다. 국방부는 “청해부대 파견지역을 아덴만 일대에서 오만만과 아라비아·페르시아만 일대까지 확대해 우리 군 지휘하에 한국 국민과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미국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원하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독자적인 작전을 펼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이란과 적대관계에 서지 않겠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결정이 어려웠던 이유는 호르무즈에 대한 파병이 우리의 이해와 관계없는 데 미국의 요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문제로 프레임 되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문제는 지난 2019년 5월 호르무즈해협에서 상선과 유조선 네 척이 피습되자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7월, 미국은 호르무즈와 바브 엘 만데브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보장할 연합체를 구성하기 위해 여러 나라와 협력 중이라고 밝히고 한국과 일본 등 주요 동맹국에 해상 호위를 위한 연합체 구성을 요청하였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은 원유의 91%, 일본은 62%를 호르무즈 해협를 거쳐 얻고 있고 다른 많은 나라도 마찬가지”라며 “왜 미국이 다른 나라를 위해 원유 수송 해로를 아무런 보상 없이 보호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나라는 항상 도사리고 있는 위험으로부터 자국 선박을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미국은 2019년 7월에 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노르웨이, 벨기에 등 주요 동맹국에 해상 호위를 위한 연합체 구성을 요청하였다.

▲ 청해부대 ⓒ해군

에스퍼 미국방장관에 따르면 국제해양안보구상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에서의 항행의 자유이며, 두 번째는 작전지역에서 이란의 도발을 억지하는 것이다. 국제해양안보구상은 아라비아만, 오만만, 호르무즈와 바브 엘 만데브 해협에서 참여국의 국민·선박을 보호하고 안정적 원유 수급과 자유로운 통상활동을 위한 항행의 자유 보호를 목표로 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과 관련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은 물론 항행의 자유를 위하여 참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의 국제해양안보구상에 참가 요청을 받은 독일과 프랑스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참가를 사양하고 유럽연합(EU) 차원의 활동을 원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프랑스는 "이란이 IMSC를 자국에 적대적인 계획으로 간주하고 있는 까닭에 IMSC는 이 지역 긴장 완화에 역효과를 낼 것"이라며 미국의 구상에 참여하지 않은 배경을 설명했다. 이후 프랑스는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유럽호르무즈해협호위작전(EMASOH)`이라는 군사동맹체를 만들어 자국 상선에 대한 보호에 나섰다. EMASOH에 지지를 표명한 국가는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등이다. EMASOH는 아라비아만,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들의 활동을 관찰하고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여 유럽국가들의 국익 보호와 중동지역의 갈등 확산 방지를 목표로 한다. 영국은 초기에 미국 주도의 활동보다는 유럽연합 차원의 활동을 지지하였지만, 태도를 바꿔 미국의 국제해양안보구상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IMSC에 참여 의사를 밝힌 나라는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알바니아, 영국, 호주 등 6개국이다. 일본은 IMSC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상자위대 호위함 1척과 P3C 초계기를 보내기로 하였다. 해상자위대의 활동 지역도 오만만, 아라비아해 북부, 바브엘만데브 해협 동쪽 공해로 한정했다. 호르무즈 해협 자체는 배제함으로써 이란 측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국제해양안보구상에 참가하는 미국, 영국, 호주 외에 독자적으로 군함을 보내기로 한 프랑스, 인도와도 수집한 정보를 공유할 방침이다.


미국은 지난해 여름부터 한국에 IMSC 파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갈등 관계가 깊어지면서 중동 정세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자 우리 정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미국 주도의 IMSC에 참여하면 한국도 이란의 적으로 간주되어 이란과의 협력 관계가 틀어지고 이란이 한국 국적 상선을 표적으로 삼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논의는 우리 정부의 조치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미국의 강요로 안보 구상에 참여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의로 시작하여 결정이 불필요하게 늦어지고 어려워졌다.


호르무즈 해협은 우리 선박이 연 170여 척, 900회 이상 통항한다. 오만만과 아라비아·페르시아만을 잇는 호르무즈해협은 걸프 지역의 주요 원유 수송 루트로, 한국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70% 이상이 이곳을 지날 만큼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결국 우리 정부는 국민·선박 보호, 안정적 원유 수급을 고려하여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에 ‘독자 파견’하는 것을 결정하였다.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은 기존 아덴만 일대 (1130km)에서 오만만과 호르무즈해협을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약 3.5배 (약 3966km)로 길어졌다. 청해부대의 기항지도 기존 오만 남쪽의 살랄라항에서 북동쪽으로 850여 km 떨어진 무스카트항으로 변경됐다.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켜져야 할 국제 규범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우리에게 닥친 이해가 무엇인지 먼저 고민하였다면, 미국의 요청 문제는 그 다음 고려순위가 되었을 수 있다. 처음부터 우리 파병의 프레임을 잘못 잡으면서 외교안보 정책 선택의 과정을 어렵게 하고, 그 선택의 효과를 극대화 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방위비 분담 협상 역시 호르무즈 파병과 마찬가지로 처음 논의의 방향을 잘못 잡아서 결정이 힘들어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한미 동맹의 한 축인 미국의 잘못된 접근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방위비와 관련한 문제들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이 변하고, 한미동맹뿐만이 아닌 세계 여러 동맹의 형태와 조건이 변하면서 항상 제기되어 왔다. 이에 따라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한미동맹의 방위비도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양한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여 분담 구조 역시 한미 양국이 합리적으로 논의할 수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와 트럼프식 ‘협상 기술’에 따라 현찰을 요구하면서 논의가 어려워졌다.


2019년 3월 미국의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둔비용+50’(Cost Plus 50) 구상을 고안해 냈다고 보도했다.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에 전체 비용 그리고 일종의 프리미엄으로 주둔 비용의 50%를 추가 부담시킨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패트릭 섀너핸 당시 미국 국방장관 대행은 미 상원 청문회에서 관련 보도에 대해 부인하였다. 같은 해 7월, 마크 에스퍼 미국방장관은 미국 동맹국에 ‘주둔비용+50’을 적용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미 상원의 질문에 대해, 동맹국들의 방위비와 기여도를 증가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에 동의는 하지만 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으므로 각각의 동맹국에 맞는 비용 분담 방법을 고안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6차례의 회의는 한미 간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현재 한미 양측은 서로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에 규정된 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임금, 군사 건설비, 군사지원비 외에 주한미군 인건비(수당)와 군무원 및 가족지원 비용, 미군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 역외 훈련 비용 등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기존 SMA 틀 내에서 협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한미동맹과 연합방위태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상호 수용 가능한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올 1월, 6번째 방위비 협상이 종료된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1월 16일 공동으로 “한국은 동맹이지 부양대상이 아니다”라며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문을 실었다. 미국은 한국이 아직 개발하지 않은 군사 능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이 제공하는 최첨단 자산은 과거의 지상군 등 다른 자산의 비용과는 차원이 다르게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자국 방위에 중요하고 안보에 도움이 되는 일에 따르는 비용을 치를 필요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방위비 협상이 이러한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이 아니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즉 미국에게 충분한 돈을 지불하라는 주장에 지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변화하는 환경, 변화하는 동맹 관계에 맞춰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주려고 하는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으로 만든 셈이다.


외교 안보를 국내 정치를 도외시한 채 결정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국내 정치적 이유로 외교 안보의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