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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산업과 팬덤의 변화

현안과정책 403호

글/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미디어광고연구소 연구위원)

 

     한국 대중음악계의 대세가 된 아이돌 음악의 빠른 산업화와 함께, 아이돌 팬덤 역시 시장 주도의 소비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산업이 진화하면, 팬덤 활동도 변화한다. 이는 곧 팬이 아이돌을 대하는 지각과 감각, 그리고 아이돌과 관련 콘텐츠의 의미를 구성하고 대하는 방식이 이전과는 다른 것이 됨을 말한다. 이 글은 산업과의 관련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팬덤의 양상을 드러내고, 그것들이 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짚어본다.


1. 들어가며

팬은 자신들의 선호방식에 기반해 아이돌과 관련 콘텐츠를 두텁게 섬세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수용한다. 1차 창작물을 변용하고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자신들의 스타일을 투영한 2차 창작물을 생산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팬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나아가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든다. 공동체 내 다른 구성원들, 그리고 공동체 바깥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들이 수용하고 만든 창작물들의 의미를 공유하고, 그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가는 감은 물론이다.1) 더불어 지지하는 아이돌의 활동, 그와 관련한 엔터테인먼트사(이하 ‘엔터사’)의 지원, 아이돌이 만들고 참여하는 콘텐츠 등에 대해서는 대내외적으로 의견을 적극 피력하고 개입한다. 팬덤은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며 참여적인 문화의 한 형태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계의 대세가 된 아이돌 음악의 빠른 산업화와 함께, 아이돌 팬덤 역시 시장 주도의 소비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산업이 진화하면, 팬덤 활동도 변화한다. 이는 곧 팬이 아이돌을 대하는 지각과 감각, 그리고 아이돌과 관련 콘텐츠의 의미를 구성하고 대하는 방식이 이전과는 다른 것이 됨을 말한다. 이 글은 그 변화의 양상과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산업과의 관련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팬덤의 양상을 드러내고, 그것들이 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대강이다.

 

2. 팬 활동의 노동화

아이돌 산업이 진화하고 팬덤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팬덤 활동 또한 변화하고 있다. 아이돌과 관련 콘텐츠를 수용하는 데 집중하던 팬덤은, 이제 아이돌을 만들고 돌본다. 아이돌이 데뷔 혹은 컴백하면, 팬들은 비상체제에 들어간다. 포털 사이트에서 반복 검색을 통해 검색순위를 올리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관련 게시물에 ‘좋아요’나 하트를 누르고 그것을 공유하며 해시태그를 확산한다. 음원 다운로드는 기본이고, 스(트리)밍, 온라인 투표, 음원 선물 등을 전략적·조직적으로 반복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돌을 향한 응원 ‘총공(세)’을 펼침으로써, 아이돌 홍보, 앨범의 성공, 이후 활동의 흥행 등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아이돌/콘텐츠를 좋아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팬들은 자신의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기꺼이 투입한다. 아이돌을 좋아할수록, 팬들이 할 일도 늘어난다.

아이돌 산업은 팬을 생산적 소비자 역할만 하게끔 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산업 생산요소의 일부로 만들어 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그로 인해 팬들은 연예기획사에 고용돼 있지 않음에도 홍보, 마케팅, 매니지먼트 등 연예기획사의 역할 일부를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즐기면서 일해주는’ 팬덤은 아이돌 산업의 상업적 가시성과 지속성 확대에 기여할 가능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처럼 이제 아이돌 팬덤은 유희적 측면만이 아니라 노동으로서의 측면도 갖는다.2)

그런 점에서 아이돌 팬덤은 다분히 놀(이노)동(playbor)적이라고 할 수 있다. 놀동은 놀이(play)와 노동(labor)의 조합어로, 퀴클리흐(Julian R. Kücklich)가 게임하는 사람들이 제작사에 고용돼 있지는 않지만, 게임산업의 상업성에 복무하는 자유노동(free labor)을 제공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제시한 개념이다. 가령,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의 능숙한 플레이어가 초보 플레이어에게 게임 속 시스템을 이해시키고 그들의 모험을 돕는 일은, 게임 플레이의 일부가 아닌 제작사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놀동이다.3) 기존 자유노동 개념이 노동주체가 고용돼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놀동은 노동이 갖는 ‘놀이적’ 성격을 부각한다.

아이돌 팬덤은 상품=아이돌에 대한 선호를 소비를 통해 드러낼 뿐 아니라, 나름의 문화적 행위들을 해나가면서 선호를 강화하고 그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힌다.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른 팬들과 소통하는 행위, 자체 굿즈나 관련 동/영상 등을 생산·유통·판매하는 행위, 팬 아닌 다른 사람들의 참여를 권장하고 이끄는 행위 등 아이돌 팬덤의 활동은 단순히 그들을 소비자로 위치시키기엔 충분히 생산적이다. 무엇보다 팬덤으로 하여금 이 모든 활동을 수행하게 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자발적 선호를 통한 즐거움에 기반하기에, 그들의 실천은 능동적이면서도 유희적이다.

하지만 유희적이고 생산적인 팬덤 활동은, 다른 한 편으로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고 재전유해 이윤 창출기제로 만들고자 하는 아이돌 산업의 욕망과 연결된다. 아이돌 산업은 팬들의 활동을 전유해 새로운 콘텐츠나 정보, 데이터, 창조적인 아이디어 등을 대가 없이 얻고, 자신의 상품인 아이돌의 가치를 배가시킨다. 팬덤의 자발적 유희행위가 지불되지 않는 노동으로 치환되는 셈이다.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으로서 아이돌의 가치는 연예기획 공장 내부의 생산 과정(연예기획사의 아이돌 연습생 선발, 트레이닝, 기획, 앨범 제작 등의 상품화 과정 등)뿐 아니라, 산업 바깥에서 대중적 인기를 획득하는 과정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산업이 생산과정을 덜 거친 원재료에 가까운 상품=아이돌을 미디어에 노출시켜 팬들의 기획·양육·관리욕을 자극하는 것이 대표적이다.4) 이처럼 아이돌 팬덤은 산업의 의도와 기획 아래서 놀이+노동으로서의 양가성을 띠게 된다.

 

3. 팬덤 플랫폼의 등장과 팬 커뮤니티의 약화

자본이 아이돌 산업에 본격 뛰어들면서 갈수록 자생적 팬 커뮤니티가 지속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포털 사이트의 카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커뮤니티 사이트 갤러리/게시판 등을 통해 자생적으로 운영돼왔던 무료 팬 커뮤니티가, 산업자본이 만든 유료기반 플랫폼과 커뮤니티들에 흡수된다. 구성원 모집·관리뿐 아니라, 공지, 정보·콘텐츠 유통, 굿즈 판매, 이벤트 개최, 그리고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덕질(덕후+질) 전반이 산업자본의 관리 하에 이뤄진다. 하이브(HYBE) 자회사인 위버스 컴퍼니(Weverse Company)의 ‘위버스(Weverse)’, SM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디어유(Dear U)의 ‘리슨(Lysn)’, 엔씨소프트(NC Soft)의 ‘유니버스(Universe)’ 같은 팬덤 플랫폼(혹은 커뮤니티)이 대표사례다. 기존에 흩어져 있던 팬들을 모으고 심지어 해외 팬들까지 그 안에 끌어넣으며, 커뮤니티 활동 자체를 바꿔놓는다.

산업자본이 직접 운영하는 커뮤니티는 꾸준히 양적으로 팽창하는 반면, 커뮤니티 구성원의 활동은 갈수록 축소 중이다. 관련 정보·콘텐츠, 굿즈 등을 독점 판매해, 창작자/콘텐츠와 수용자 사이의 채널을 일원화함은 물론이고, 팬들의 2차 창작활동에 대한 산업자본의 경계와 개입도 강화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1차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산업자본이 대체로 특정한 상황, 아니면 비영리나 수익 전액기부를 목적으로 유통·판매할 때나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상황이다. 산업이 주는 떡밥이나 먹을 뿐, 직접 창작물을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날이 줄어든다. 창작자/콘텐츠와 수용자 사이의 채널이 줄어들고 단일화되면서 남는 것은 창작자/콘텐츠와 자신 간의 관계다. 더욱이, 디지털화된 커뮤니티는 편리함을 준다. 온라인상에서 발품을 팔지 않아도, 창작자/콘텐츠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알아서 가져다준다. 편리한 모바일 결제시스템 구축으로 인해 안에서 돈을 쓰기도 쉽다.

그 편리함이 팬들로 하여금 다른 팬들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아이돌을 위해 부지런히 활동하는 일도 줄인다. 결과적으로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 설사 불합리한 상황에서조차도 능동적인 집단행위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남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과 관련 콘텐츠에 계속 열중할지, 독점화로 인해 계속 가격이 오를 확률이 높은 정보·콘텐츠나 굿즈를 살지와 같은 수준의 고민들에 대한 개인적인 선택뿐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경유해 자신을 표현하고, 일상에서 힘을 얻거나, 바깥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팬을 앞으로 계속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팬들이 직접 만들고 유지하고 확장해왔던 커뮤니티를, 산업이 가져가버린 결과다.5)

 

4. 나가며

아이돌 산업의 외적 팽창과 내적 복잡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존 사업자들은 사업영역과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고, 새로운 사업자들 또한 속속 산업에 진입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들을 고려한다면, 이 글에서 논의한 산업 변화에 따른 팬덤의 변화가 이후로는 또 어떤 방향과 형태로 전개될지, 그 영향력이 얼마나 심화될지를 예의주시하며 추적할 필요가 있겠다. 이 글에서는 팬덤 변화의 양상과 의미를 두 가지 정도에 초점을 맞춰 논의했지만, 그 밖의 매우 다양한 양상이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다. 논의내용들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필요한 논의는, 아이돌 산업과 팬덤의 형태와 의미를 붙들어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유동성을 인정하고 현재의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앞으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이겠다. 이를 위해 생산-콘텐츠-소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맥락들 각각과 총합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절실함을 강조하며 글을 맺는다.


1)Jenkins, H. (1992). Textual poachers: Television fans & participatory culture. New York: Routledge.

2)강신규·이준형 (2019). 생산과 소비 사이, 놀이와 노동 사이: <프로듀스 48>과 팬덤의 재구성. <한국언론학보>, 63(5), 269~315쪽.

3)Kücklich, J. (2005. 1). Precarious playbour: Modders and the digital games industry. Fibreculture, 5. Retrieved from http://journal.fibreculture.org/issue5/kucklich_print.html.

4)강신규·이준형 (2019). 생산과 소비 사이, 놀이와 노동 사이: <프로듀스 48>과 팬덤의 재구성. <한국언론학보>, 63(5), 269~315쪽.

5)강신규 (2022). 1990년대의 서브컬처, 지금의 서브컬처. <문화/과학>, 110, 75~106쪽.